상대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37권 PDF전문보기

상대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인정해야

오늘날 인류역사 가운데 이러한 귀착적 하나의 사랑의 모점(母點)이 생겨났느냐 할 때,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안 생겨났다는 거예요. 만약에 타락하지 않고 그런 귀착점이 생겨났더라면 우리 인간은 어디 가더라도 자연히 그렇게 하려고 그럴 거예요. 바르고 먼 길은 그 길이예요. 바르고 먼 길을 찾아가려면 중앙선쪽으로 가야 돼요. 사람은 큰 것을 원해요. 그리고 높은 곳, 깊은 곳을 원해요. 다 그렇지 않아요? 제일 깊은 곳, 제일 높은 곳의 선은 반드시 이 한 선으로서 중앙선이예요. 수직선이예요. 제일 넓고 제일 긴 곳은 이 한 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마음이 벌써 이러한 사랑의 작용을 본성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고대하는 모든 것은 제일 높고 크고 깊고, 그러면서도 제일 좋은 곳이예요. 아니예요?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이 뭐냐? 거기에는 하나님이 있는 동시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랑의 곳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하나의 사랑의 궁을 만들어 가지고 그 가운데 안식하며 살려고 하는 겁니다.

오늘날 인간 세상에서는 이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기독교 사상은 퇴폐적인 사상이 돼 버렸어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절대적인 하나님이라 보고 창조주는 거룩한 분이라고 하면서 피조물은 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이 어디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나, 레버런 문은 혼자 있더라도 내 마음에 사랑이 통할 수 있는 소성을 가지고 있어요. 만일 혼자서 '아이구 좋다. 수근수근, 야야…' 하면서 얘기를 한참 해보라구요.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거예요. 하지만 조그만 손수건을 보면서는 '야, 좋다' 하고 춤추고 미친 사람처럼 웃더라도 그 누가 미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상대적 가치의 절대적인 기준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 구멍 뚫어진 손수건을 하나 받은 것을 일생 동안 사랑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목을 걸고 사는 거예요. 그럴 수 있지요? 「예」 사랑을 도금시킨, 사랑을 입힌 모든 것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인 동시에 절대적인 상대를 필요로 하는 분이예요. 아무리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없으면 사랑을 찾을 수 없어요. 사랑을 갖고 있더라도 사랑의 자극을 받을 수 없어요. 사랑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오는 거예요. 모든 순환 이치에 의해 가지고 상대적 극에서부터 사랑을….

그래서 지구에는 그것을 표상한 지력선이 있어요. 남북이 통하는 힘이 있는 거예요. 우주 이치를 전부 다 상징적 혹은 형상적으로 보여 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큰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본래의 큰 것을 원하는 마음은 무엇을 근거하고 있소?' 하고 묻게 됐을 때 '허허! 난 몰라요. 그저 그래' 그런다구요. 또, 높은 곳을 원하는 마음은 무엇을 중심삼고 원하는 거냐고 물을 때, 잘 대답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런 생각도 안 해보고 있다구요. 그다음에 제일 크고 좋은 곳을 원하는 마음은 무엇을 근거로 하느냐? 이것은 사랑을 기점으로 한다는 거예요. 사랑을 기점으로 할 수 있는 이 사랑의 공동분모점만 통하면 어디나 다 갈 수 있다는 거예요. 어디나 갈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여기에 딱 들어오게 되면, 내가 어디 가고 싶으면 하나님의 허리에 딱 붙어서 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야, 요놈아 내 허리에 왜 붙었어?' 하지 않는다구요. 그것이 딱 붙었거든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쓸어 주고 싶은 사랑의 혹이라는 거예요. 사랑의 혹은 백 개 달리고 천 개 달려도 싫지 않은 거예요. 거 알아요? 「예」

만일 그렇게 됐다면 어떻게 됐느냐? 인간이 탈선하려야 탈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다른 곳에 가려야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이 선에 들어와서 폭발되었더라면, 아담 해와하고 하나님이 한꺼번에 사랑으로 부딪치는 번갯불이 한번 났더라면 천지에는 타락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미 밝은 빛을 느끼고 영과 육이 거기에서 이미 하나되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은 이중구조로 되어 있지요? 양과 음, 외적인 사람과 내적인 사람입니다. 영과 육을 갈라놓은 것이 우주다 이거예요. 내적인 우주, 외적인 우주입니다.

그것이 언제 하나되느냐? 하나되는 힘이 무엇이냐? 다른 힘 가지고 안 돼요. 어떠한 압력을 중심삼고, 콤프레서로 미는 힘을 가지고 하나됐다 하더라도 또 갈라지지만, 사랑의 힘을 중심삼고 딱 접촉시켜 놓으면 떨어지라고 해도 달라붙으며 더 들어간다는 거예요. 파고들어가서 저쪽 극에까지 뚫고 나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여기 가운데서 붙었으면 서로가 극으로 뚫고 가면서, 작업하면서 여기 와서 또 극을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완전한 것, 좋은 것, 크고 귀한 것, 그 모든 것은 무엇을 기점으로 하고 요구하게 됐느냐? 사랑이예요. 왜 사랑이 귀하냐? 사랑을 찾게 되면 하나님도 걸려 있는 거예요. 하나님도 사랑에서는 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도망 못 가는 거예요.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여보 하나님, 당신은…' 하면서 욕을 하더라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들이 어떻게 영생을 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 절대적인 주체 앞에 있어서 나도 절대적인 상대 자리에 세움을 받아 가지고…. 그 세움받았다는 것을 무엇으로 논리적으로 증거하느냐? 사랑이라는 개념은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거예요. 상대권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나, 상대적 인간은 하나님같이 영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론적인 얘기가 벌어지는 거예요. 덮어놓고 영생해요? 그게 아닙니다.

무지에는 완성이 없는 거예요. 이론적이어야 돼요. 오늘날 과학 세계에서 컴퓨터로 계산해도 오차가 벌어지는데, 과연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생활이 컴퓨터로 계산한 그 이상의 자리에 있어요? 그렇지 못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이 가까와 오는 오늘날, 기독교가 아무리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다 망하게 되어 있어요. 내가 망하지 말라고 해도 하나님이 그런 그릇은 깨뜨려 버리게 돼 있다구요. 여기 나장로, 박장로, 복음교회, 전부 다 큰소리치지만 두고 보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