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중심삼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계시는 하나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37권 PDF전문보기

사랑을 중심삼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계시는 하나님

자, 오늘 제목이 뭐냐 하면 '천국건설'인데, 천국을 어디서부터 창건할 것이냐? 거기에는 참된 하나님, 즉 사랑을 체험한 하나님이 있어야 됩니다. 창조이상으로 세운 모델, 즉 대상적 인간 완성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끔 연애하는 것 이상의 사랑의 불을 태워야 되는 거예요. 이런 말 한다고 '레버런 문 쌍놈이구만. 쌍소리를 해서…' 하는데 이게 쌍소리예요? 임자들도 어미 아비가 그렇게 해서 태어났어요. 수작 말라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여기 나오라구! 당장에 내가 보여 줄께. 타락하지 않은 기준으로 말할 때는 쌍소리가 아니라 거룩한 얘기예요. 신성한 얘기예요.

사랑의 중앙선에 있어서 '아이구 행복하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됐다는 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도 미완성의 자리에 있다는 거예요. 이러면 뭐 '우― 하나님도 미완성 자리에 있다고 한다' 이런다구요. 단, 사랑을 중심삼아야 한다는, 단이 붙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통일교회는 이단교회다. 하나님이 미완성하다니…' 하는 거예요. (웃음)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은 체험을 완성한 자리에 못 가 있다구요.

하나님의 눈이 취하고…. 술 먹으면 눈이 취하지요? 난 먹어 보지 않아서 취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한번 먹어 볼 거라, 이제부터. (웃음) 이 세상에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반대할 패가 없어졌으니 먹어도 괜찮지. 취하면 맛이 어떤가? 눈이 취하고 코가 찐찐하고 말이예요. 귀가 무슨 새소리에 비할 거냐, 뭐냐? 귀에 달콤한 소리…. 하나님도 취할 수 있는 자극적인 사랑이 필요한 거예요.

그렇게 되면 사랑은 극과 극이 있기 때문에 중앙선에 왔다가는 폭발된 데로 또 돌아가야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폭발되는 거예요. 폭발된 힘이 얼마나 강한지, 부딪친 힘보다도 폭발된 힘이 더 강하기 때문에 대번에 원점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사랑의 힘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대해 다시 갚겠다 할 때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100만큼의 가치를 내가 받을 때, 자기를 사랑해 줄 때, 여러분 마음은 그 사랑의 마음을 알고 100 이상 도와주고 싶소, 90만큼, 한 10퍼센트 떼어먹고 도와주고 싶소? 「100 이상」 백의 몇백 배 이상 돌려보내 주고 싶을 거예요.

그런 힘이란 것은 사랑의 힘밖에 없다는 거예요. 사랑은 주면 줄수록 크다는 거예요. 사랑은 투입하면 투입할수록 커진다는 거예요. 인간의 역학 관계에 있어서도 입력이란 건 출력보다 큰 거예요. 단, 사랑의 힘은 입력보다 출력이 몇 배가 될 수 있다 이거예요. 인간과의 사랑에 대한 충격만 일으키면 몇 배로 빵― 늘어난다 이거예요.

부부 싸움 중에 제일 무서운 싸움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은 싸움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나를 죽여라. 체면도 위신도 몰라. 날 죽여라. 이 쌍놈의 자식아. 백정놈의 자식아. 벼락맞을 자식아' 욕 중에 제일 추잡한 욕은 사랑의 싸움을 통해서 벌어지는 거예요. 이 말이 맞소, 안 맞소? 「맞습니다」 안 맞아, 안 맞아, 나 모르겠어. 내가 거짓말장이인지도 몰라. 「맞아요」 맞지. 맞지. 맞지.

난 이런 걸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은 요사스럽게 야단하며 사는 세상이지만 감옥에 들어가서도 혼자 웃고 살았어요. 일생 동안 몰리고 쫓기고 살면서도 콧노래하면서 산다구요. 나는 콧노래 잘한다구요. 한번 해볼까? 「예」 (박수) 초하룻날부터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통일교회 패들은 '선생님 초하룻날 했으니 우리 365일 전부 다 노래하고 삽시다' 할 텐데 일은 언제 하고? 천국건설은 언제 하고?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행복한 분이 못 됐다는 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까지도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나왔다는 거예요. 그런 남자가 나왔어요? 예수님도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했다구요.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된 자리에서 그런 논리가 성립돼요? 사랑으로 하나된 자리에? 곡절이 사무친 사연을 어떻게 해결할 거예요? 사랑으로 일치된 자리에 있어서 당신의 뜻과 내 뜻이 어디 있어요? 뜻이 일치되지 않은 거예요.

성경을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 가지고 '성경을 보라, 기도해라' 하는데, 엎드려서 기도를 하면서 자기만 복받자고 하는 거예요, 못된 짓만 하고 말이예요. 그저 땅구멍을 파고…. 보라구요. 혼자 사는 호랑이가 암놈을 찾아서 이러한 소리를 암만 천년만년 지르다 죽는다 하더라도 그 호랑이를 동정하는 호랑이 새끼는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암놈이 사는 데 가서 '어흥' 소리를 질러야지.

하나님도 그렇고, 사람도 어디 그랬어요? 하나님을 암만 불렀다 하더라도 대상적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타날 수 없다는 거예요. 기도는 그런 자리에서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나, 문 아무개는 기도를 안 해도 '하나님이다' 하고 나타나시는 거예요. 내가 원하기 전에 다 이루어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