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37권 PDF전문보기

사랑만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어

그러면 어찌하여…. 부모님들은 사랑하는 자식을 중심삼고 돌고 있다는 거예요. 암만 무슨 일이 바쁘다 하더라도, 어디 나가서 일하고 뭐 딴것 하더라도 결국 그 마음은 자식에게 돌아오는 거예요. 자식을 중심삼고 돈다는 거예요. 그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만히 잘 주고 잘 받을 수 있어야 기쁘다는 거예요.

고생한 것을 전부 다 잊을 수 있는 것은 자식을 마음으로 그리다가 저녁에 돌아가 자식을 품고 사랑할 때 거기에 자식이 화동하며 웃는 모습, 부모께 대답하는 그 모습을 볼 때입니다. 거기에는 전부가 평등이 된다는 거예요. 평등이라구요. 모든 것이 새로이 창조될 수 있는 힘의 원천으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대할 수 있는 자리에서 위안이 있는 것이다, 해소가 있는 것이다, 이런 원리가 성립되는 거예요. 안식이 어디에 있느냐? 뭐 일 안 하고 편안히 쉬는 것이 안식이 아니예요. 완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자리에 거하는 것이 최고의 안식의 자리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의 자리를 찾게 된다면 오늘날 의식주 문제를 초월할 수 있고, 잠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모든 어려움도 이 사랑 앞에는 소화 안 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만을 중심삼은 내가 되게 될 때는 인간 세상에 있어서 인간으로서 완성한 사람이 아니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가치로 보면 무한한 가치와 대등한 자리에 올라감과 동시에 절대자가 있다면 절대자 앞에 그 가치를 당당히 절대적 상대 가치로서 나타낼 수 있는 권위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을 중심삼은 '나'라는 결론이 나오는 거라구요. 아시겠어요?

그럼 '나'라 할 때, 여러분은 지금까지 생각할 때 나는 동떨어진 난 줄 알았지만 그것은 틀려요. 부모의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 나입니다. 그 사랑의 배후는 무엇이냐?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맨 처음의 기원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모를 중심삼고 자기 자체가 사랑으로 연결된 사위기대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입니다.

사랑의 탈이 무엇이냐 하면…. '나' 하면 혼자인 줄 알아요. '나'가 누구냐, 도대체? 내가 뭣이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나는 뭐예요? 난 남자고 말이예요, 난 여자지. 그러면 그 남자라는 것은 뭣이고 여자라는 것은 뭐예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생겨났어요? 왜 이렇게 생겨났어요? 그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것이 왜 이렇게 생겨났느냐 하면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사랑 때문에. 알겠어요?

남자가 그렇게 생겨나고 여자가 그렇게 생겨난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겨났어요? 사람이 왜 생겨났느냐 이거예요. 어디에서 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느냐 하는 이 문제가 심각한 문제라구요. 왜 그렇게 생겨났느냐? 아, 여자가 요렇게 생겨난 것은 사랑 때문이라구요. 사랑은 혼자 찾을 수 없는 거예요. 상대로부터 찾아지기 때문에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거예요. 기분 나쁘지? '남자를 위해서 내가 왜 태어났어, 나를 위해서 태어났지' 할는지 모르지만 천만에. 그 남자를 위해 태어났다는 말은 사랑을 앞에 놓고 하는 말이예요, 사랑을 중심삼고. 이건 전부 다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면 암만 내 욕심이 많아 불평 바가지라도 말이예요,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면 가만있다는 거예요. 그럴 것 같아요?

거 할머니들, 생각해 보소. 지금까지 뭐 층층시하 시할머니부터 시아버님, 시어머니 모시고 사느라고 말이예요. 또 며느리, 제일 악한 뭐라고 할까, 악하다면 이상하지만 말썽꾸러기 며느리까지 같이 산다면 그것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리가 이렇게 움직인다는 이 기준이 있다면 그것도 다 설사 안 나고 소화해서 살을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은 무슨 살이예요? '사랑의 살을 만들어 뚱뚱하고 제일 큰 사랑의 나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환경이 아주 뭐 보기만 해도 눈을 찌푸리고 도망갈 수 있는 환경이지만 한번 음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 세상만사가 이렇게…. 저런 극성맞은 시할머니로부터 시아버지 시어머니 며느리까지 3대 흉악한 그런 것도 내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크고, 내 사랑의 가치가 얼마나 큰가 한번 테스트하기 위해서 저렇게 나타났구나!' 이렇게 생각해 보라 이거예요. '젓가락으로 꼭 집어서 맛보고 싶다' 이럴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거 얼마나 위대하겠어요.

사랑만이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도 사랑 가지고 소화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애승일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죽음을 소화하자는 거예요. 자기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사랑을 가지고 소화하느냐? 죽음이 슬픈 것이예요? 그 사랑하는 자식이 여기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