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종교가 하나되어 방향성 중심을 설정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0권 PDF전문보기

철학과 종교가 하나되어 방향성 중심을 설정해야

지금까지의 사상, 철학이 뭐냐? 철학, 사상이 뭘하는 것이냐 이겁니다. 그것은 진리를 밝히는 것입니다. 진리를 밝히는 데 환경적 진리는 자연과학을 통해서 밝히지만, 진리를 밝히는 데 제일 진리를 논하려고 하는 자체가 누구냐? 사람이라는 거예요. 사람이 진리 자체로 돼 있다 이거예요. 내 자체가 진리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걸 설명할 줄 모른다 이거예요. 그걸 설명하려면 역사적인 기원 등 전후 좌우 상하관계를 다 연결시켜서 그렇다 하는 결론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으로 되어 있어요. 몸은 부모로부터 태어났지만, 마음은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마음은 무형이고 몸은 유형인데 어떻게 유형 무형이 화합하지 않으면 안 될 구성체로 되어 있느냐 하는 근본문제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 대해, 인간에 대해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철학은 인간 자체를 중심삼고 헤매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정의를 못 내리고 있어요.

또 인간이나 사물, 모든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면, 여기 중앙위원 의장인 최용석이라는 양반이 있는데 이 양반이 그냥 오늘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존재라 이겁니다. 역사성이 있어요. 그러면서 이 시대에,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40억에 연관된 시대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거 현재 미래가 제멋대로 있느냐? 이게 문제예요. 제멋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것과 큰 것이 단계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중심 방향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이걸 생각할 때 그건 우리 조상도 못 세우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 조상, 조상, 조상, 조상 해서 위로 올라가면 인류의 조상은 하나입니다. 종지조상은 하나인데 하나인 그분이 이런 방향을 설정해 놓고서야 자연히 세워지는데 방향을 못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막연하나마 주인이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여기서부터 종교가 생기는 것입니다.

막연하나마 인간보다도 위대하고, 또 인간은 한계 내에 있기 때문에 한계를 언제나 초월해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종교는 뭐냐? 그런 한계선을 극복해 가지고 무한한 세계와 자동적인 인연을 맺어 가지고 그 무한한 가치의 동반자가 되어야 되겠다, 동반자가 되자 이래서 나온 것입니다. 종교라는 건 미신 종교로부터 여러 단계가 있어요, 역사적인 종교를 보면.

이렇게 볼 때, 신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교에도 여러 신이 많습니다. 신이 있느냐? 이것이 참 문제입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신이 있다고 설명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증명해요? 그 이론을 세운 사람은 옳다고 하지만, 이론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신에 대한 확실한 설명을 해야 됩니다. 신에 대한 설명을 암만 했댔자 그것은 인식을 통해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종교를 중심삼고 이해한다는 것은 오늘날 철학에서처럼 논리를 통해서 하는 이해가 아닙니다. 그거 가지고는 안 통한다 이겁니다. 직관을 통해서 관계를 맺은 체험적인 이해가 있어야 돼요. 이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철학책을 아무리 봤댔자 신을 발견하지 못 해요. 세계의 도서관을 전부 다 찾는다 해도, 무슨 귀한 학문이니 학설을 다 설파하고 채비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최후의 문제는 종교인과 철학자가 토론을 펴 가지고, 종교인이 철학자에게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이해시키느냐, 또 철학자는 종교인에게 어떻게 이론적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이해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요 두 가지 문제가 끝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같다는 거예요. 간단한 문제예요.

결국은 원인이 미분명한 동기로부터 과정을 거치는 인간은 제아무리 확실한 것을 결정했다 하더라도 원인이 미분명하니 그 결정이 분명할 수 없다 이겁니다. 그건 이론적입니다. 그러니 원인의 확정을 어떻게 밝히느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 가지고….

철학이라는 것은 이론을 통해서 사람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내 보고, 생활환경이나 사는 방식이나 제도를 보고, 습관성을 통해 보면 '사람은 이런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이란 우리 환경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아무런 것도 갖고 있지 않다 이겁니다. 무형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지금까지 신을 발견하기 위해 몸부림쳐 나왔지만 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다른 것이 뭐냐? 철학과 종교가 어떻게 다르냐? 종교란 것은 뭐냐? 신을 만나 가지고 신과 더불어 사는 생활을 하자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위대한 종교인으로서 신을 만나 가지고 '나는 신과 더불어 산다, 살아 보니 이렇더라' 하는 것을, 현세인들이 급변하는 환경의 지식 과정을 거치면서도 증명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지식기반을 갖출 수 있었느냐?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 동기를 접촉해 가지고 느끼는 사람도 그 해명 방법에 있어서는 막연하다는 거예요. 그 막연한 종교를 통해 가지고 역사를 거치면서 종교이상을 그려 나가는 종계(宗界), 오늘 기독교로 보면 지상천국, 혹은 천년세계가 온다 하는 것이 완전한 것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건 이론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막연하다는 겁니다.

막연한, 불완전한 데서 불완전한 동기로부터 불완전한 과정적 어떤 존재를 통해 가지고 완전한 것이 나온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불완전하니 불완전한 것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앞으로 끝날에 가면 불안한 자리에 가 가지고, 돌변적인 변화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믿고 있지만, 그렇게 되기 쉬운 거예요? 그럴 수 있으면 이 많은 40억 인류는 다 놔두고 특정한 기독교를 믿는 사람 몇 명만 중심삼고 승천하게 하고 세상을 다 박살내 멸해 버려요? 그런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이지요. 윤리적인 관에 있어서 인정할 수 있는 신의 인격을 찾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문제는 앞으로 종교와 철학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학계에서도 내가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학자들을 수습한 것입니다. 세계 최고 정상의 학자들을 모아 가지고…. 이들은 전부 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입니다. 제멋대로입니다. 5백 명이면 방향이 5백 방향이예요. 철학 하는 사람 다르고, 과학 하는 사람 다르고, 사회과학 하는 사람, 경제학 하는 사람, 정치학 하는 사람 각각 다르고…. 이게 난장판이예요. 전부가 자기주의라는 겁니다. 그러한 환경에서는 이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방향성 설정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게 문제예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움직여 나가는 데 있어서 방향성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 이겁니다. 이건 정책방향이지요? 현재의 대한민국이 이런 위기일발인 상황에서 어떤 방향을 설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 방향이, 대한민국이 움직여 나가는 방향이 절대적이라고 이렇게 세웠다 할 때, 그 방향이 우주의 방향―대우주는 하나의 방향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는데―과 부딪치게 될 때는 대한민국의 방향이 깨진다 이겁니다. 그 방향에 대우주의 방향이 협조할 수 있게 되면 합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부딪치든가 반대하든가 하면 그것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금 훌륭하더라도 역사의 흐름 가운데 반대로 흘렀다가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의 설정이 필요한데, 그 방향의 설정은 철학이라든가 종교가 확실한 기원에서부터 확실한 방향을, 그 방향이 누구나 영원히 환영할 수 있는 방향성을 취해 중심이 이것 아니면 안 되겠다고, 이건 혁명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방향성의 중심을 설정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게 보게 되면 문제가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