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양심작용의 주체는 하나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2권 PDF전문보기

인간 양심작용의 주체는 하나님

왜 이 말을 하느냐 하면 말이예요. 여러분의 양심작용은 절대 올바르다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내 몸뚱이에 달려 있는 마음은 조금만 그릇된 행동을 해도 '얘, 얘! 이 녀석아' 하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거예요. 몸뚱이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지요, 조금만 나쁜 짓을 해도 '안 돼!' 하고 말이예요. 여러분이 늙어 죽을 때까지, 만일 영계에 가 있다면 거기서까지라도 그 마음은 작용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양심작용을 왜 하느냐? 자기는 모르지만 어떠한 절대적인 주체의 상응적인 위치에서 관계된 내용을 통하여 양심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우리는 이 심정을 통해서 인정하고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을 봤어요? 마음을 못 봤다구요. 마음이 있어요? 마음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이 있다구요. 있는데 어떻게 있어요? 어떻게 작용해요? 이것은 선악에 있어서 어떻게 작용해요? 높은,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 자체가 어떤 주체의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세우고 그것을 따라가기 위한, 순응하기 위한 작용이 아닙니다. 이미 마음 자체가 작용하는 피안의 어떤 주체적인 내용에 인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런 작용을 한다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 양심이 있는 것을 볼 때에, 도의적인 인류역사의 모든 수양생활이라든가 종교생활을 볼 때에, 그 작용현상은 모두가 다르지만, 그런 작용이 있듯이 보이지는 않지만 주체적인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양심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있는 거예요. 무엇을 보고? 작용을 보고. 하나님이 작용을 통해서 들어가는 곳에는 위대한 힘이 있어요. 그 힘은 종교생활을 하지 않고는 모릅니다. 그거 사되고 꿈같은 얘기이고 미신자들이나 하는 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미신자가 아니라 과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똑똑한 사나이라구요.

이렇게 볼 때에, 인간이 제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제일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결과적 존재예요. 아무리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논리를 추구해서 결론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결과적 존재임에 틀림없어요. 결과적 존재는 원인을 근거로 하여 그 과정을 연결시킬 수 있는 연체적 존재예요. 연관적 관계를 연결시키는 하나의 체, 몸을 엮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연체(聯體)라는 거예요. 관계를 맺는 거예요. 그런 관계세계를 지금 말하고 있지만 그걸 알아야 돼요. 관계보다 연체적으로 연결된 몸뚱이예요, 몸뚱이. 이러한 관계를 갖고 있어야만 돼요.

내가 이 말을 왜 하느냐? 신이 있다! 원리가 그래요. 이제 아시겠어요? 신이 있다구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있는 것은 절대적인 사실이예요. 마음을 근거로 해서 이상을 추구하는 그 작용이 내 생활권을 휩쓸고 있으니, 양심수양에 있어서의 고차적인 요인인 신이라고 하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인간에게 양심을 자극시키는 힘이 있는 것을 볼 때에, 그 하나의 주체가 있다는 논리적 추구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