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찌하나'하는 입장에 계신 불쌍한 하나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3권 PDF전문보기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계신 불쌍한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본래의 창조이상으로 보게 될 때에, 하늘을 중심삼고 보면 인간은 충신이 되어야 되고, 생활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할 것인데, 충신이 못 되고 효자 효녀가 못 됐습니다. 그러니 그런 효자 효녀를 바라보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효자를 세우고 혹은 충신 열녀를 세우기 위한 그 마음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내적인 하나님의 고충이 더 컸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의 역사를 거듭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 신도들도 이러한 한(恨)의 역사를 박차 버리고, 한의 시대를 전부 다 말아 치워 버리고, 이 땅 위에 하늘이 소망하는 충신열녀를 사보하고 하늘이 사모하는 효자 효녀를 소망하면서 그걸 찾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적인 전통은 반드시 충신을 찾고있고, 혹은 시대적인 환경에 있어서 부모에 대한 효자 효녀를 찾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바라보는 그런 내용은 남아 있으나 실체로서 하늘 앞에 찾아지지 못한다 할진대는 하늘은 아직까지 말하고 나서 대답하는 자식을 찾지 못한 것이요, 심부름을 시키고 나서 심부름 간 자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것과 같은 답장입니다.

이런 처지에서 우리의 선조들을 대해 나오는 하늘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은 기나긴 역사노정에 있어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서, 또 그 마음 가운데는 `이 땅 위에 충신을 세워 놓지 못하면 어찌하나? 이 땅 위에 참다운 효자 효녀를 세워 놓지 못하면 어찌하나' 하는 마음을 갖고 나오신 것입니다.

참다운 효자 효녀를 세워 놓으면 하늘의 소원은 거기서부터 무한까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와 세계와 천주까지 이 충신의 전통을 세워야 할 것이며, 효자 효녀의 전통을 이 많은 인간 앞에 세워야 할 것인데 그러한 환경도, 그러한 존재도, 그러한 민족도, 그러한 국가도, 그러한 세계도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아버지는 `나는 어찌하나' 하는 애달픈 심정을, 하루가 아니고 지금까지의 기나긴 세월을 하루와 같이 한을 품고 탄식하며 나왔다는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늘이 그와 같기에 하늘 앞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영계도 물론 그랬다는 것입니다. 역대 우리 선조들이 하늘을 배반할 적마다 천상에 가 있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영은 물론이려니와 실수하고 간 모든 선조들까지도 그 시대의 후손들을 대하여 그들이 소원하던 그 뜻을 대신하여 탄식의 고비를 넘어 가지고 승리의 어떠한 흔적을 세우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는 소원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이스라엘 선민의 후손들이 하늘 뜻 앞에 모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에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 역시 `우리는 어찌할꼬?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불러 놓게 될 때는 크나큰 책임을 지워서 반드시 하늘땅을 대신한 충신, 효자 효녀로서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 세워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런 선조들이 후손으로 태어났던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그 뜻을 대할 수 있는, `나는 어찌하나' 하는 하늘의 일념을 제거시켜 줄 수 있는 이런 실체적인 대상의 존재가 나오지 않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땅을 대하는 영계의 영인들도 같은 입장에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섰으니 하늘의 뜻을 대해 나오던 우리의 선조들도 마찬가지요, 하늘과 땅도 마찬가지요, 오늘날 이 인류도 마찬가지의 운명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인류의 입장이라는 것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늘은 전후를 알고 앞으로 갈 길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권 내에 있었지만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전후도 모르고 그저 절망 가운데서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권 내에서 생애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을 바라보게 될 때에 이 얼마나 비참한지 이들을 바라보는 하늘은 또다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그 후손으로 태어난 여러분 자신들은 생각해 봐야 됩니다.

하늘을 앞에 놓고 선조를 불러 바라보게 될 때 우리 선조 가운데 하늘이 고대하던 충신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없었다 할진대는 지금 나는 어떠한 존재냐? 혹은 우리 선조 가운데에 역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하늘이 소원하시던 참다운 효자 효녀가 있었느냐 할 때에 없었다 이겁니다. 그러면 후손된 나는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입니다.

하늘의 역사는 복귀의 역사로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여 역사적인 발전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해 나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에, 오늘날 개인으로부터 가정ㆍ민족ㆍ국가ㆍ세계까지 하늘을 품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면, 오늘 그 환경에서 개인을 지켜주고, 가정을 지켜주고, 사회와 국가와 민족을 지켜주고 세계까지도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이 없다 할진대는 하늘은 또 이중 삼중의 짐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없이 역사를 세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입장에 있으니 개인적인 책임도 하늘이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책임도 하늘이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ㆍ국가ㆍ세계적인 책임도 하늘이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종적 책임의 역사를 해 나오면서 한 중심을 세워 가지고 개인으로부터 가정ㆍ민족ㆍ국가ㆍ세계ㆍ천주까지 연결시켜서 승리적인 결과를 일대에 세울 수 있는 세계적인 참다운 조상을 만들었더라면 그를 중심삼고 하늘은 수습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나가고 보니 때는 세계적인 때가 되었다 이겁니다.

지금 때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땅을 중심삼고 볼 때에, 복귀섭리로 볼 때에 세계적인 때인데 이 세계적인 때를 맞이하여 승리한 조상이 없게 되니 이 종적인 역사가 땅 위에 설 수 없으며, 종적인 역사가 설 수 없으니 횡적인 이 현실적인 기반도 세울 수 없는 연고로 하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택하여 세웠던 것을 후회할 수 있는 입장에 섰고,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하늘 앞에 책임 못 한 것을 또 후회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어디 한 부분을 가꾸어 수습할 수 없는 이때, 이 사명적인 시대는 세계적 시대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책임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세계적인 책임을 할 수 있는 민족ㆍ국가가 없으니 이 책임을 누가 지느냐 이겁니다. 그 책임을 그 누구도 못 지니 하나님 자신이 또 져야 할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현세를 바라보시고 `나는 어찌하느냐' 하는 그런 입장인 것을 우리가 미루어 보게 될 때 과연 하나님은 불쌍한 분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