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슬픔과 비참과 억울함을 탕감해 온 통일교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4권 PDF전문보기

하늘의 슬픔과 비참과 억울함을 탕감해 온 통일교회

오늘날 이런 역사적인 실정을 우리가 다시 한 번 회고해 보게 될 때에, 오늘 우리 통일교회 창립 10년이라는 세월을 지내고 생각해 보게 될 때에, 하늘은 오늘날 이 땅 위의 우리 교회면 교회를 두고 바라시는 그 소원이 무엇이겠느냐? 통일의 무리들이 당신의 소원과 일치되기를 얼마나 바라실 것이며, 당신의 가정과 일치되기를 얼마나 바라실 것이며, 당신의 심정과 일치되기를 얼마나 바라시겠느냐 이겁니다. 10년이 지나갔으면 10년 세월 어느 한 날이라도 연결되지 않은 시간이 없는 자리에서 하늘은 소원이 일치된 자리에 선 통일의 사람을 불렀을 것이요, 사정이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을 불렀을 것이요, 심정이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을 불렀을 것이어늘, 하늘이 '내 소원의 실체요, 내 사정의 실체요, 내 심정의 실체다. 10년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잃어버릴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을 통일교회 신자 가운데서 불러 세울 수 있을 것인가가 지극히 의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보게 될 때, 여러분이 어느 한 날, 자나깨나 좋고 나쁜 일을 통하여서 과연 아버지의 뜻을 여러분 뜻으로 얼마나 하늘 앞에 세워 나갔으며, 이 죄악된 세상을 대하는 6천 년 원수를 앞에 놓고 싸워 나가야 할 하늘의 사정 앞에 있어서 얼마나 절박한 사정에 처해 봤으며, 잃어버린 자녀들이 유린당하는 이 슬프고 비참한 역사적인 과거를 미루어 보면서 현실의 비참상을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종결짓겠다는 간곡한 하늘의 심정에 뒷받침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애써 나왔느냐? 이런 입장에서 다시 한 번 회고해 보게 될 때, 우리는 하늘과 거리가 먼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스승으로서의 지금까지 소원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았고,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인지 알았고,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세상 만민은 하나님의 소원을 모르더라도 나만은 알아주어야 되겠다, 만민이 사정을 몰라주고 만국의 수많은 도인들이 몰라주더라도 나만은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되겠다, 나만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주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이 선생이면 선생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다는 겁니다.

때가 점점 다가오고 시대가 촉박해 오면 올수록 하늘의 소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재촉하는 하늘의 심정을 우리는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이 불쌍한 민족의 처참상이 눈앞에 전개되는 것을 보면 볼수록 하늘의 사정과 심정이 얼마나 애달픈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 애달픔이 하늘의 애달픔이어늘 그 애달픔을 붙들고 하늘 앞에 나를 통하여 어떠한 위로를 드릴 수 있는 그 무엇이 없겠느냐고 몸부림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통일의 무리요, 이러한 자라야만 시대는 용납하지 못하더라도 하늘은 반드시 통일적인 실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의 누룩이 된 통일적인 개체로서 통일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등 수많은 종족을 대표한 가운데서 먼저 부름받은 통일교인이라 할진대, 여러분들이 종족을 대신하여 '오늘날 내가 부름받았으니 내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종족을 대신할 수 있는 소망의 실체가 나니 하늘이여, 나를 세워서 종족을 명령하시옵서. 나를 세워서 당신의 사정을 이 종족과 더불어 나눌 수 있게 하시고, 나를 세워서 당신의 심정을 종족과 더불어 나눌 수 있게 하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심정이 간곡하고, 그 사정이 처절함을 느끼고, 그 하나님의 소원을 여러분의 소원으로 느끼면 느낄수록 여러분이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초조하고, 얼마나 조급한가를 생각해야만 되는 겁니다. 이걸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10년 세월을 슬픔으로 지내 버린 것을, 혹은 고통길로 걸어온 것을 우리들이 회고하면서 생각하게 될 때, 과거의 슬픔이 도리어 실패를 가져왔고, 과거의 고통이 도리어 낙망을 가져오고, 과거의 비참함이 오늘에 불행을 초래했기에, 우리에게는 기념할 아무런 무엇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성공을 가져오고, 그 비참함과 억울함이 하늘의 분함과 억울함을 탕감할 수 있는 승리적인 억울함으로서 하늘 앞에 세워져야만 수고로웠던 고난의 길, 수고로웠던 고통의 길도 축하하고 기념할 수 있지, 그렇지 못하게 되면 기념이 아니라 화(禍)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10년노정을 걸어오면서 우리는 외로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비탈길을 걸어왔습니다. 험한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 나오면서 낙망의 때도 있었고, 고통의 때도 있었고, 비참한 때도 있었고, 눈물과 피땀을 흘리던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 하늘이 바라던 소망과 하늘이 바라던 사정과 하늘이 바라던 심정기준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어느 정도 발전을 가져왔기 때문에 기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런 날을 맞이할 적마다 하늘 앞에 속죄의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