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가려면 하늘땅의 한을 풀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6권 PDF전문보기

종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가려면 하늘땅의 한을 풀어야

그러면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과거를 살펴보면 종의 시대…. 하늘 앞에 무조건 종이예요. 변명이 필요 없어요. 죽으라 하면 '예' 해야 하는 거예요. 하늘을 대해서 아버지라는 명사를 쓸 수 없었다는 거예요. 아버지라 부르려면 양자여야 되지요. 하늘 앞에 종이니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일은 맡기는 거예요. 종의 시대에 있어서 싸워 영계와 육계를 정복하여서 종 중에서 참다운 하늘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 비로소 충신의 칭호를 받아야만 양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충신의 칭호를 받아야 양자가 되는 거예요. 군왕에게 있어서 충신과 자기 아들은 다른 거예요. '너는 충신이 될 수 있고 열녀가 될 수 있다'라는 칭호를 받아야 양자의 자리에 나가는 거예요.

양자의 자리에 나가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각이 같고…. 양자의 자리에서부터 자기가 상속받기 위해서는 그 주인, 혹은 그 양부모의 심정을…. 양부모의 혈족을 중심삼고 볼 때 양부모의 인연권 내에 무엇이 인연되어야 돼요. 뭐 같은 것이 있어야 된단 말이예요. 그러려면 심정이 통하든가, 생활의 감정이 통하든가 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위로도 통하고 아래로도 통하고 상하관계로도 통해야 돼요. 아버지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횡적인 활동 조건도 통해야 된다는 거예요. 종의 관계에 있어서 그렇게 통해야만 비로소 양자의 자리에 나간다는 거예요.

양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신 책임질 수 있어야 됩니다. 종의 자리에서는 대신 책임이 아니예요. 심부름이예요. 어디까지나 심부름이나 하는 것이지만 양자의 자리에 나가서는 대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믿고 너에게 명령하노니 내 모든 위업을 대신 맡아서 관리해라 이거예요.

그렇지만 양자는 부모가 살아 있는 자리에서 자기 당대에 이것을 옮겨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자는 내적 혹은 외적 대행을 하며 하늘땅의 어디를 가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는 이런 자리에 나가 가지고 승리의 결정권을 가져야만 비로소 그 기반 위에서 부모의 자리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닦지 않고는 재림역사가 벌어질 수 없습니다. 재림역사가 이 지상에 벌어지지 않는 한 우리가 찾고 있는 참다운 식구는 나오지 않는 것이요, 참다운 형제와 참다운 가정은 나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이러한 역사적 탕감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냐? 접붙이는 거예요. 재차 접붙여야 돼요.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과 피와 땀으로써 하늘과 일체를 이루자,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려 탕감해 가지고 하늘과 일체가 되자'라는 것입니다.

일체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느냐? 종의 노정에서부터 양자의 노정을 거쳐 직계의 아들로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까지 나가면 그 부모가 거느린 모든 재산은 내 것이예요. 하늘이 우리의 참다운 부모라면 하늘땅의 모든 것은 내 것이예요. 이것을 이용해 가지고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면 절대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이용해서 전체가, 그 형제가 잘살고 그 가정이 잘살고 그 부모가 즐거워할 수 있는 입장의 행동을 해야지 자기 위주로 한 입장에서 행동하면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가 무슨 자리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던 거와 같은 자리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몸은 비록 개인이로되 개인된 그 몸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 일신의 행복을 위하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행복보다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안식을 위하여, 이 땅 위의 만민의 행복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갖은 고역과 역경의 십자가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더라도 불평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예수는 내가 이런 길을 가는 것은 탕감노정을 거쳐가기 위한 것이요,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러한 것이요, 내가 땀을 흘리고 죽음의 길을 가는 것도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예수의 소원은 이 희생과 맞바꾸어서 역사도상에 남아졌던, 역사도상에 맺혀 있던 하늘의 한과 인류의 한을 푸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이것 때문에 살았고, 이걸 붙들고 싸웠어요. 그래서 하늘땅의 한을, 인류의 한을 풀어 놓았기 때문에 하늘은 인류를 찾아올 수 있고 인류는 예수로 말미암아 하늘을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축복받을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의 한과 인류의 한을 여러분 중심삼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