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수고의 노정을 탕감해 나가는 3년노정과 7년노정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6권 PDF전문보기

역사적인 수고의 노정을 탕감해 나가는 3년노정과 7년노정

그러면 이러한 경지에서 여러분들이 각자를 비판해 보게 될 때 나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이것을 빨리 깨달아 가지고 여러분이 우리 식구끼리는 물론이로되 삼천만 민중 혹은 전세계 인류를 대신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과연 이색 민족을 형제와 같이, 즉 동생과 같이 사랑할 수 있고 언니 형님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돼 있느냐? 이런 관점에서 참다운 부모를 모시고 충성을 할 수 있는 내가 돼 있느냐? 또 만민의 살길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던 거와 같이 내가 과연 희생할 수 있겠느냐?

이러한 문제를 걸어 놓고 서슴지 않고 하늘을 위하여 부모를 위하여 형제를 위하여 식구를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내가 고스란히 제물되겠다는 결의를 갖추고 나서야만 비로소 하늘이 공인할 수 있는 아들이요, 딸이요, 형제요, 식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짊어진 십자가는 그 당시에 있어서, 혹은 33년 동안의 십자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2천 년 동안의 십자가로서 연속되는 거예요. 참다운 예수로 출발하여서 참다운 형, 참다운 주인의 입장에서 이걸 연결지어 가지고 지금까지 끌고 나온다는 거예요. 그걸 바라보게 될 때 예수님이 짊어진 십자가는 그 당대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인연을 끌고 개인ㆍ가정ㆍ국가ㆍ세계까지, 지금까지 넘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이 짊어진 십자가,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이 통일교회에만 한정된 책임이냐? 아니라는 거예요. 전 30억 인류에게 연결된 것입니다. 이 30억 인류가 하늘 앞에 참다운 형제, 참다운 자녀, 참다운 식구가 되어 가지고 참되이 하나님을 위주로 한 가정이 되기 전까지는, 이것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오늘날 각자의 사명이 십 년, 혹은 백 년, 천 년이 가더라도 연대적인 십자가의 책임으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그런 십자가의 책임을 오늘날 우리들은 연장시켜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을 우리 당대에 축소시켜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힘을 다하여 이것을 단축시키면 단축시킬수록 역사적인 십자가를 제거시킬 수 있고, 우리가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민족적인 십자가를 제거시킬 수 있고, 인류적인 십자가를 제거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단축시키지 못하게 될 때에는 역사적인 십자가요, 현실적인 십자가요, 미래적인 십자가로 남아진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지방에 나가 전도하게 될 때, 여러분 개체로 나가 전도하되 개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 전체를 대신해 나가 싸우는 것이요, 전인류의 가정을 위하여 나가 싸우는 것이요, 전 우리 형제 식구를 위해 나가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가 실수하게 되면 여러분을 위주로 한, 하늘이 져야 할 십자가는 여러분이 구원될 때까지, 여러분 개인과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종족과 여러분의 민족과 여러분의 전체가, 여러분 개체를 위주하여 관계된 전체가 고생하게 될 때까지 남아진다는 거예요.

개인을 위주로 하여 전체와 연결지어 나오는 하늘이기 때문에 여러분 개인이 전체적인 책임을 그 당시에 완결짓지 못하면 역사적인 십자가의 고충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그 당시에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전부 다 완결짓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예수는 2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세워 놓고 그 당대에 짊어져야 했던 십자가의 짐을 개인적인 십자가로서, 가정적인 십자가로서, 민족적인 십자가로서, 국가적인 십자가로서, 세계적인 십자가로서 짊어지고 지금까지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이 십자가의 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오시는 주님 앞에 상속해 주어 그 주님이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개인적인 십자가로부터 가정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십자가까지, 이 지구상에서 영육을 합하여 완결짓지 않는 한 예수님의 십자가도 끝나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의 십자가도 끝나지 않는 것이요, 우리 식구의 십자가도 끝나지 않는 것이요, 온 인류의 십자가도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연대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연고로 부모가 짊어진 십자가는 여러분의 십자가요, 형님이 짊어진 십자가는 동생의 십자가요, 동생이 짊어진 십자가는 형님과 부모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서로 단합하여 공동적인 보조를 맞춰 가지고 공동적인 행동을 하여 한번에 탕감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런 전체적 탕감조건을 어떻게 세우느냐? 이것이 오늘날 통일 식구들이 이뤄 놓아야 할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무엇을 말하느냐? 행동통일을 말하고 심정 통일을 말하고 이념통일을 말합니다. 우리가 심정과 행동과 이념의 통일을 부르짖게 된 것은 오늘날 우리의 지역과 환경의 위치는 다를지라도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 전체가 한꺼번에 탕감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3년 도상에 있어서 선생님이 수고할 때 여러분이 수고하고, 선생님이 고생할 때 우리 통일교회 전부가 고생하는 거예요. 또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고생하고 선생님이 고생하면 하늘도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 역사적인 수고의 대가로서 넘어간다는 거예요. 이것이 오늘날 3년노정이라는 것을 여러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가운데 슬픈 놀음이 있다 할진대는 개인적인 슬픔이 아니예요. 하늘의 슬픔은 우리 전체의 슬픔이요, 하늘의 기쁨은 우리 전체의 기쁨이요, 우리 개체의 기쁨은 하늘땅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 널려 있는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생활하는 그 생활은 별개의 생활이 아니예요. 행동적인 일치요, 심정적인 일치요, 이념적인 일치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생활권 내에 있어서 통일된 이런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좋아도 같이 좋아하고, 슬퍼도 같이 슬퍼하고, 울어도 같이 울고, 십자가를 져도 같이 지는 이런 입장에 서야만 됩니다. 하늘이 역사도상에서 탕감적인 기간을 세워서 넘어가고자 하는 이 기간이 오늘날 7년노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7년노정은 어떤 노정이냐? 참된 식구와 참된 형제가 참된 부모와 더불어 넘어가자 하는 기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아무리 홀로 있다 하더라도 하늘의 염려를 대신하고, 책임을 지고 있는 어떤 사람의 염려를 대신하고, 혹은 여러분의 교회 전체의 염려를 대신 책임진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서로가 전체 목적을 위하여 하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골고다 도상에 선 예수 대신자가 되어서 나가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당시에 있어서 예수님에게 참다운 동생이 있었다면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거예요. 참다운 누나가 있었다면 그 누나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면 같이 져야 된다는 거예요. 참다운 부모가 있었다면 그 부모도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게 되었을 때 하늘도 같은 입장에서 십자가를 지는 과정을 거쳐갔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와 같은 입장에서 같이 십자가의 길을 넘어갔지만 지상에 있는 예수의 형제라든가 혹은 예수의 제자들은 같이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 갈라졌다는 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십자가, 가정적인 십자가…. 전부가 세계적으로 갈라지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한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것을 몽땅 종합하여야 합니다. 예수의 동생은 예수가 가는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여야 되고 예수의 형님 혹은 친척도 예수가 가는 길을 같이 가야 됩니다. 그랬으면 그때에 하늘땅을 위주로 한 가정적인, 전체 식구적인 십자가를 탕감하였을 것인데 그러지 못한 연고로 오늘날 개별적인 십자가를 진 민족이 나온 것입니다. 민족이면 민족, 가정이면 가정 전부가 갈라져서 고난의 길을 거쳐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면 끝날의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영육을 합한 실체를 가져 가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스승이 지면 제자가 지고, 부모가 지면 자녀가 지고, 형님이 지면 동생이 져야 됩니다. 동생 누나 할 것 없이 전체가 한꺼번에 민족을 대신하고 국가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고개를 넘겨 놔야만 하나의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닦아 놓으면 이제 앞으로 오는 세계국가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개인적인 노정, 가정적인 노정, 종족적인 노정, 민족적인 노정, 국가적인 노정 어느 기간에서는 행동 일치하여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 기뻐도 같이 기뻐하고, 슬퍼도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노정을 지나가야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기쁨이 있다면 그때 동참한 사람들도 같은 부활의 기쁨을 느낄 수 있고, 그때에 같은 입장에 동참한 자라야만 예수님이 승리하면 같은 승리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기준을 넘어갔더라도 앞으로 오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십자가와 가정적인 십자가를 또 나눠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식구라 하니 참된 식구, 참된 형제가 되기 위해서 부모를 위주로 하여 참된 형제의 인연을 갖추어 같이 울고, 같이 싸우고, 같이 십자가를 지고, 같이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자는 것이 7년노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