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화된 전통을 지니고 있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70권 PDF전문보기

습관화된 전통을 지니고 있는 게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임자네들 알라구요. 우리 할아버지 형제가 삼 형제라구요. 우리 할아버지가 맨 장손이고, 승균이 할아버지가 둘째이고, 그다음 세째는 파주 원전에 계신 분이예요. 그 3대를 중심삼고 보면 둘째는 다 객사했어요. 승균이 할아버지도 풍기에 갔다가 죽었어요. 그러니 승균이 할머니가 남편이 죽어 가지고 돌아 들어왔다구요. 시집이라 해서 들어온 것입니다. 둘째 할아버지가 객사했어요. 그다음에는 그 할아버지의 아들들의 둘째도 전부 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내게 삼촌되는 분이 객사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장손 맏이고, 용기 아버지가 둘째 번입니다. 그분도 객사했어요. 나가 가지고 어디 가서 죽었는지, 어디 묻혔는지도 몰라요. 그다음에는 또 쟤 아버지 되는 익균이, 쟤 아버지도 여기 휘문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병이 나 가지고 고향에 가서 죽긴 죽었지만 객사한 거라구요. 또 그다음에는 세째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도 휘문중학교에 다니다가 죽었어요. 똑같아요.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또 그렇게 됐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러 나가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래서 우리도 절대 공부를 안 시키려고 한 거예요. 파주 할아버지가 구학문 학자인 동시에 평양신학 11회 졸업생이예요. 신문학을 다 하고, 영어도 잘하는 양반이거든요. 조카들을 전부 다 공부시켜야 될 걸 아는데 할아버지로부터 전부 다 나가면 죽는다고 하니까 못 시킨 거예요.

내가 둘째예요. 3대의 둘째번으로 태어났거든요. 또 승균이도 둘째고, 용기도 둘째라구요. 이 3대를 걸고 사탄이 우리 가정을 몰살시키려고 했던 거예요. 그래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 것입니다. 그 기간에 도깨비 장난도 하고, 뭐 1년에 우리 집에서 다섯이 죽어 나갔다구요. 할아버지가 죽었다 살아나고, 이건 뭐 쑥새둥지가 되는 거예요. 도깨비들이 난동을 벌이는 거예요.

아들딸은 시집 장가 보낼 때 쓰는 예장이라는 게 있다구요. 열두 새 이상 보름 새 되는 것 말이예요. 그걸 토끝이라고 그래요. 물레에서 뽑는 것 말이예요. 그걸 전부 다 독에다 둬 가지고 한 필이 되게 되면 그 베를 맨다구요. 베를 매 가지고 무명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쌓아 놓은 것을 밤에 전부 다 풀어다가 우리 집에 한 150년 이상 된 밤나무가 있는데, 거기에서 저 윗마을 박씨네 집에 큰 밤나무가 있었는데 거기에까지 공중으로 어떻게 해서 하얗게 널어 놓는 거예요. 승균이, 그거 생각나? 「예」(웃으심) 별의별 흉한 일이 다 벌어졌어요. 도깨비가 없는 게 아니라구요. 또 우리 평안도 시골에 가게 되면 벽문이 있는데 벽문에 조그마한 문이 있다구요. 벽문이 큰 문이 아니라 조그마한 문이라구요. 어머니가 부엌에서 불을 때면 불이 뻥하고 그 공기 나가라고 뚫어 놓은 조그마한 문으로 빠져 나가 가지고 처마 끝에 불이 붙는 거예요. 그게 믿어져요? 그러니 그거 뭐….

그리고 형이 미치지, 누나가 미치지 대환난이 벌어진 거예요. 삼촌네 개가 애기 귀를 잘라 먹지, 큰 돼지가 한꺼번에 물에 빠져 죽지, 소가 죽지, 말이 죽지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승균이 그거 다 생각나나? 「예」 난장판이 벌어진 거예요. 그런 탕감역사를 거쳐 가지고 지금까지…. 결국은 나 하나 남았어요. 그러니 사탄이 얼마나 내가 밉겠어요? 둘째 번을 전부 다 청산했는데 내가 남았으니 얼마나 밉겠어요?

선생님 시대에서는 그렇게 해 가지고 이 길을 나왔어요. 공부도 전부 다 내가 개척해서 했지요. 시골서는 한다고 해야 그러다가 말 것이 뻔하거든요. 그래 혁명을 한 거라구요. 용선이라는 사촌 동생하고 승균이랑 학교에 들어가게 한 것도 전부 다… 그런 놀음부터 시작한 거예요. 선생님 시대에서는 선생님이 전부 다 개척했어요. 자기가 갈 길은 자기가 개척한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기미년 독립만세 전에 3년 동안 평안북도는 흉년이 들었다구요. 먹을 것이 없어 가지고 산에 가서 소나무의 송기(松肌) 먹으며 끼니를 이어오던 그런 얘기….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탕감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한국이 어려운 왜정 40년 수난길을 거쳐 해방이 되면서 미국을 중심삼고 선교사들과 완전히 하나돼야 되었던 것입니다. 이대 연대 사건이 안 났으면 말이예요…. 그들은 2세라구요, 2세. 복귀역사를 선생님이 잘 아는 사람이라구요. 2세부터 꺼꾸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연세대 이화여대 사건이 안 났으면 그때에 전부 다 경무대와 연결이 되고, 기독교 전체가 연결되는 거예요. 이놈의 김활란이…. 그때 김영운이가 종교과장이었어요. 중요한 선생들이 다 돌아갔기 때문에, 거기에서 김활란이 반대하게 안 돼 있었어요. 그런데 김영운이가 보고했는데도 불구하고 기성교회 몇몇 사람들이 반대해 가지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화여자대학교하고 연세대학교만 그때 돌아갔으면, 반대 안 했으면 한국 기독교가 다 돌아가게 돼 있었어요. 다 지나간 얘기지만 말이예요. 그래 가지고 그때 다섯 교수하고 학생 14명이 퇴학을 맞고 역사에 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그 전통적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통일교회에 들어온 임자네들, 소위 간부들이 알아야 된다구요. 습관화된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사회에서 살던 그 풍습과 습관이 다 남아 있다구요. 하나님은 그걸 인정 안 해요. 새로 태어난 기준에서 출발한다는 게 힘들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