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높고 넓고 큰 것을 원하는 사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74권 PDF전문보기

보다 높고 넓고 큰 것을 원하는 사람

그러면 나무 자체의 세포 가운데는 뭐가 있느냐? 잎사귀만 있어요? 가지는 없고? 가지도 있고, 그다음에는 줄기도 있고, 뿌리도 있는 거예요. 그런 형태만 갖춘 것이 아니라 내적인 모든 영양소, 생명을 지닐 수 있는 모든 내적 인연이 그 조그만 세포 하나에 다 포함돼 있다 이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 사람은 높은 것을 바랍니다. 큰 것을 바라는 것이다 이겁니다. 여러분 안 그래요? 작은 것을 바라는 사람이 있어요? 낮은 것을 바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조그만 애들을 봐도, 손자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떡을 세 개 갖다 놓았다면 그중에서 크게 보이는 것이 양으로 보면 적을 수도 있다구요. 왜? 동그란 떡하고 넓적한 떡을 양으로 보게 되면, 동그란 것이 구형으로 돼 있어서 합판지 같은 데에 놓으면 넓적한 떡보다도 커 보인다구요. 그러나 척 봐서 넓적하게 큰 것을 먼저 잡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러지요? 아이들만 그래요? 할아버지 할머니 청년들은 안 그래요? 사람이란 종자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높은 것을 원해요. 여러분은 낮은 것을 원해도 좋습니다. 돼먹은 사람이라면, 돼먹기를 바라는 사람 종자라면 높은 것을 바람과 동시에 큰 것을 바랍니다. 넓은 것을 바라고 먼 것을 바랍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세계적이다'라고 말합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난 사람이라 하면, 저 강원도 산골 마을…. 강원도 사람들, 미안합니다. 강원도 감자바위 골짜기에서 산 사람은 감자만 구경하고 살아서 먹는 것도 감자밖에 몰라요. 이렇게 감자밖에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보지 못한 풀을 어떤 사람이 떡 먹으면 그걸 보고 저것 죽는다고 생각할 거예요. 얼마나 의심이 많겠노? 좋은 것을 아무리 먹어라 먹어라 해도 자기가 모르는 것은 안 먹고 뒤로 가서 감자를 찾는다 이거예요. 감자바위니 감자만 찾아 먹어요.

그런 사람을 원치 않아요. 삼천리 반도 강산에 있는 식물 중 먹을 수 있는 식물은 모두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삼천리 강산아! 나를 위한 강산아!' 해야지, `아이고! 삼천리 강산은 그만두고 저 강원도 산골짜기 감자바위만 나는 안다' 이러는 것은 원치 않는다구요. 알아도 많이 알려고 하고, 많은 거와 관계를 맺으려고 해야 됩니다.

요즈음 젊은 녀석들 말이예요. 대학교에 다니는 젊은 놈들, 못된 자식들이 많더구만. 이놈들이 뭐 어떻고 어떻고, 현정권을 타도해 가지고 뭐 어떤 세계를, 민주화 세계를….

여러분, 민주화라는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공산주의적 민주화 개념하고, 이런 얘기 하려면 시간이 많이 가지만, 민주세계가 주장하는 민주화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걸 몰라 가지고 세상을 망치고 그런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공산주의적 민주화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것은 노동자 농민을 위한 독재정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노동자 농민 외의 사람은 안 들어가 있어요. 부르조아, 유산계급은 안 들어가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절대적인 이론입니다. 확실해요. 여기 국회의원 해먹는 양반들, 두루뭉수리해 가지고 `민주화, 민주화!' 하는데, 그래 어떤 색깔의 민주화예요? 다르다구요.

민주주의 세계에 있어서의 민주화는 보편타당화돼 있어요. 노동자 농민도 들어가지만 자유주의로서 개인 소유를 주장하는 패도 들어가 있다구요. 그걸 알아야 돼요. 공산주의 세계는 민주주의적 소유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세계는 민주주의적 소유개념이 있습니다. 개인 소유예요. 그게 민주주의의 정의입니다. 공산주의는 국가 소유예요. 이런 점이 다르다는 거예요. 민주화의 개념이 다르다구요.

소유권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소유권이 유산계급의 소유로서 착취 내용을 자극시킬 수 있는 제도를 통해서, 노동자 농민을 사방으로 착취하는 그 행동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노동자 농민의 해방과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절대 독재주의입니다. 그러나 민주세계에서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개인 소유입니다. 누구나가 다 가질 수 있어요. 그게 달라요.

또 노동자 농민 체제가 있으면 노동자 농민 체제를 거쳐서야 자유가 있지, 누구나 다 보편타당한 입장에서 자유를 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게 다르다구요. 민주세계에서는 계급을 초월해서 자유가 있는 거예요. 민주주의 세계에 있어서 자유니 민주화운동이니 하는 것은 자유를 찾아가는 공산주의 자유와 다릅니다. 그들의 자유는 뭐냐 하면 독재정권을 중심삼고 반동분자를 완전히 제거시킨 입장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자유입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니 속아 사는 거예요.

공산세계에서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소유권한이 없습니다. 물질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국가 관리제도와 규범에서 벗어난 화합 혹은 동화(同和)라든가 연결이 불가능합니다. 북괴는 그렇지 않아요? 농사를 짓더라도 공동체 농장이 돼 있는 것입니다. `아, 오늘은 배가 아프니 쉬겠다' 해도 누가 면해 주지 않습니다. 즉각…. 자유가 없어요. 제재를 가하는 거예요. 배고파도 밥을 마음대로 해먹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개념이 다릅니다.

공산주의는 노동자 농민 절대주의를 중심삼은 체제권 내에 있어서의 민주주의를 말하지마는, 자유세계에서의 민주주의는 절대적인 체제가 아니예요. 언제나 국민으로 하여금 체제가 형성돼 나가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구요. 이것들은 그것도 모르면서 민주화, 민주화…. 이놈의 자식들! 세계적으로 나 때문에 곤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