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목적을 갖고 사는 인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76권 PDF전문보기

이중목적을 갖고 사는 인간

여기 20년 이상 된 사람들 한번 손들어 보자구요. 꽤 있구만. 오늘 선생님 만났는데 무슨 말씀 해줄까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말씀을 해줘야 할 텐데, 선생님 오시면 무슨 말씀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 없어요?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말 해요? 「예」 욕이 나가도 괜찮지요, 욕? 「예」 (웃음) 그러면 오늘은 `참된 본향의 곳으로 돌아가자' 하는 내용이 될 거예요, 참된 본향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알고 들으라구요.

이 세상을 가만 보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있다 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는 하나님이 있다는 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없다는 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자를 대표하는 민주세계는 유심사관(唯心史觀)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 중심이 있다 하는 사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관(史觀) 하게 되면 역사적으로 보는 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가 있는가 하면 유물사관(唯物史觀)으로 중심이 없다, 물질이 근본이다 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두 패의 사람들이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가을 절기가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 열매맺을 때가 왔습니다. 봄을 거치고 여름을 거쳐 가지고 가을 절기가 되면 열매가 맺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열매는 뭐냐? 오늘날 유심사관과 유물사관의 세계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본래 사람 가운데도 그와 같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개인 가운데 있어서도 하나님을 좋아하는 내적인 사람과 하나님을 싫어하는 외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 본심이라는 것은, 양심이라는 것은 곧아야 됩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들이 `그 사람은 양심이 비뚤어졌다', 혹은 `아, 그 사람은 양심이 바르다' 그런 말을 합니다. 그 양심이 보여요? 양심을 본 사람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는데 어떻게 구부러지고 곧은지 알아요? 이렇게 따지고 보면 그런 말 자체도 모호합니다. 그러나 자고로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마음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옳고 그른 것을 헤아려 표시하게 될 때에 `마음이 바르다', `마음이 구부러졌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런 마음은 무엇을 중요시하느냐? 바른 것을 중요시합니다. 바른 것을 중요시해요. `바르다' 할 때는, 이것도 바른 것입니다. 이것도 바르잖아요? 이것도 바른 거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바르다' 하는 개념은 뭐냐? 360도를 중심삼고 말하자면 어떤 자리에 선 것이냐? 수직의 자리에 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수직을 360도로 전부 금을 긋게 되면 어디를 통하느냐? 중심을 통합니다. 둘레를 보면 전부 다 둘이 되지만 금을 상대적인 관계가 되게 전부 그으면 3점이 생겨납니다. 3점이 생겨나요. 이 3점이 핵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같은 각도로 그어 놓으면 전부 한 점에 모이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에 위가 있고 가운데가 있고 아래가 있는데, 위와 가운데와 아래를 통하는 자리를 수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맞아요, 틀려요?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다는 말은 우주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수직을 중심삼고 측정된 개념을 인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바르다는 말이 있다면 이 바른 것에 대해 또 다른 바른 것이 있어야 됩니다. 종적인 면에 대해 평면적으로 바른 것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종적으로 바르다면 횡적으로 바른 것이 있어야 됩니다. 종적으로 바른 것과 횡적으로 바른 것이 정말 바르다고 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수직선에 45도 되는 것이 바른 거예요? 뭐예요? 「90도」 90도. 90도 되는 것이 횡적으로 바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이중목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양심은, 종적인 이것은 과거·현재·미래를 통해서 변할 수 없습니다. 횡적인 것도 변할 수 없어요. 개인에게 있어서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을 연결시키려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식구가 적은 게 좋아요, 많은 게 좋아요? 「많은 게 좋습니다」 형제가 많은 게 좋아요, 적은 게 좋아요? 「많은 게 좋아요」 어머니 아버지는 많은 게 좋아요, 적은 게 좋아요? (웃음) 이게 문제예요. 횡적으로는 많은 것을 좋다고 하지만, 종적으로는 많았다가는 큰일납니다. 이건 불가침 조건이예요. 남편도 많은 게 좋아요, 적은 게 좋아요? (웃음) 다 웃는구만. 그게 뭐냐 하면 많은 것은 다 좋아하는데 부모라든가 남편이라는 것은 많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부모라는 것은 아버지가 위에 있다면 아들은 아래에 있기 마련입니다. 수직이 돼야 됩니다. 또, 이 수직에 `바르다' 할 수 있는 횡적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동쪽 저 끝에 가 서면 아내는 이 끝에 수직으로 서야 됩니다. 그런 존재들은 하나밖에 없다 이거예요. 여자를 대할 수 있는 참된 남편, 남자를 대할 수 있는 참된 아내, 부모를 대할 수 있는 참된 아들, 참된 아들을 대할 수 있는 참된 부모, 그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거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종적 기준은 많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수직이 돼야 됩니다. 이것은 영원불변이예요.

여기 청주를 보게 되면 말이예요, 보통 `해발 몇 미터 위에 있다' 이렇게 말하지요? 청주는 몇 미터 위에 있어요? 해발 몇 미터? 그것도 몰라요? 하여튼 중앙선을 중심삼고 수평선으로 해서 동쪽이든가 서쪽이든가 동서남북 어느 쪽에 있어 가지고 높이는 얼마, 중앙에서는 어느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이렇게 위도와 경도를 중심삼고 위치를 아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이 원칙기준하에서 측정을 해 가지고 자기 위치를 설정하는 거예요. 이것이 없다 할 때는 아무리 자기 위치를 결정했댔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양심은 바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바른 것은 뭐냐? 수직선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광물세계를 보더라도 말이예요, 108가지의 원소가 있지만 그 원소들이 전부 다릅니다. 동서남북에 처해 있는 위치가 다릅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처해 있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하고나 합하질 않습니다. 상대 될 수 있는 것과는 속닥속닥하고 합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암만 비벼대고 뭐해도 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물세계도 주체성이 있고 상대성이 있고, 종적 존재가 있고 횡적 존재가 있는 것입니다. 그 종(縱)에 완전히 횡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입장이 될 때, 여기와 여기와 여기는 다 같은 겁니다. 그렇게 각도가 같을 때는 화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끼리끼리 모입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그러지요? 그건 남자와 남자 끼리끼리 모인다는 거예요, 여자와 여자 끼리끼리 모여 가지고 싸움한다는 거예요? 그 끼리끼리라는 말 가운데는 남자 끼리끼리도 있고, 남자 여자 중심삼은 끼리끼리도 있습니다. 그래, 남자 끼리끼리 합해야 되겠어요, 여자 끼리끼리 합해야 되겠어요, 남자 여자 끼리끼리 합해야 되겠어요? 어떤 거예요? 어떤 게 중심이예요? 이렇게 볼 때, 남자 끼리끼리는 바른쪽밖에 안 되고 여자 끼리끼리는 왼쪽밖에 안 되지만, 남자 여자 끼리끼리는 종적으로 서기 위해서 이 둘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