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사연은 자기를 어떤 목적으로 끌고 가게 했던 것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87권 PDF전문보기

과거의 사연은 자기를 어떤 목적으로 끌고 가게 했던 것들

서울에 처음 오니까 환경이 얼마나 다른지, 자기 고향에 살던…. 정주로 말하면 정주는 시골이지요. 그 환경에 있다가 도시로 들어오니 이거 얼마나 다른지 180도가 달라요. 또 얼마나 범위가 넓은지, 거기에 박자를 맞추면서 지내던 모든 사실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고향이 그리운 것이 말이예요, 그거 뭐 말할 수 없어요. 가게 되면 내가 이거 이거 하던 것을 다시 한 번 해 봐야 되겠다 하는 것이 많거든요. 그런데 첫번 여름방학 때 고향에 안 갔어요. 그리운 것을 극복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때부터 도 닦는 길이지요. 얼마만큼 간절한가…. 방학이 그때 한 달쯤 되는데 말이예요, 한 25일쯤 되면 고향에 가고 싶은 것보다도 이제 친구들이 돌아오는 거라구요. 그 친구들이 돌아올 텐데 그들이 돌아와 가지고 고향에서 어떻게 지냈나 하는 게, 나는 고향에 못 갔으니까 그게 궁금하다구요. 그래서 이 녀석들이 돌아온 뒤에 불러 가지고 너는 한 달 동안에 뭘하고, 너는 뭘했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것 이런 것 했다고 해요.

그러면 나도 그랬을까…. 이렇게 되면, 다음에 내가 찾아갈 때 나는 이렇게 이렇게 프로그램을 짜 가지고 이렇게 해야겠다, 그러면서 심각하게 혼자 나날을 보내면서…. 그때는 자취를 하는 겁니다. 친구들은 하숙방에 있다가 전부 다 고향에 갔는데, 혼자 밥 먹기가 얼마나 어색한지, 그러니 나가 가지고 자취하는 거예요. `자취도 해 보자.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까?' 이러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내가 20대 전후한 그때에 있어서 서울만 해도 추웠어요. 보통 영하 17도예요. 한강이 안 언 때가 없었어요. 그렇게 추웠다구요. 그런 때에 자취하면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가지고 쭉 물을 쏟으면 그 두레박 쇠에 손이 얼어붙어요. 그러면서 방에 불을 안 때고 사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그때 모본단 포대기를 깔아 놓고 쭉 자고 일어나면 짝짝 판이 박힌다구요. 그러면 그 판 박힌 것이 보통 때는 안 진다구요. 이게 6개월도 가고 그래요. 그게 인상적이예요. 그게 다 추억에 남아요.

하도 추워 가지고 전구를 켜 가지고 화덕같이 끌어안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자다가 전기에 데어 까풀이 벗겨진 것, 그런 것이 다 인상적이예요. 그래, `서울' 하면, 그때 사실 내가 그랬지 하는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목욕탕에 들어가서 쓱 씻게 되면 `아, 그 시절…' 하는 것이 기억에 나요.

그때 내가 매일 일기 쓰던 것이 있으면 지금도 상당히…. 금은보화를 주고도 살 수 없을 거예요. 산을 더듬으면서, 마을 마을을 더듬으면서 그 자라던 시대의 심정세계를 그린 재료를 일본 형사들한테 끌려 다니면서 다 불태워 버렸다구요. 그런 여러 가지 사연이 많지만, 그 사실들이 결국은 자기라는 인간을 어떤 목적으로 끌고가는, 그 과거에 하나의 남겨진 유물이었더라!

지금도 그래요. 내가 서울 흑석동에 있었는데 옛날 생각을 가지고 몇 번씩 가 보았어요. 그런데 서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 흑석동에 한번 들어가면 자연 풍경도 있고 말이지, 추억 가운데 인상지어져 이렇게 흐르던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 가지고 가 보고는 낙심을 한 거라. 야, 이거 뭐 발전한 것도 좋고 이렇지만 이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옛날을 더듬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높은 산에 올라가 보니 상상도 할 수 없더라구요. 얼마나 들춰서 파 가지고 집들을…. 옛날에는 그 산골짜기가 깊다고 했는데 어떻게들 다 메우고 집들을 지었는지, 삭막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 옛날에 있던 집을 찾아 봤어요. 찾아가서 집을 보니 알 수가 있나요? 가만히 이것 보고 저것 보고 이것 보고 저것 보니까 생각이 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