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은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부터 출발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03권 PDF전문보기

참사랑은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부터 출발해

그러면 사랑이 어디서 왔느냐? 이제 근본을 찾아들어가요. 이거 알아야 됩니다. 절대 필요한 거예요. 그것이 어디에서 왔느냐? 근본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거예요. 그렇잖아요? 어머니 아버지에서 종지조상으로, 맨 나중에는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나님도 자기 사랑의 상대인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란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걸 부정할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을 찾아 창조를 시작한 하나님은 자기가 갖고 있는 그 자체, 백 퍼센트 이상을 투입하고 싶다는 논리적 기원이 형성돼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찾아 나가는, 참사랑을 세우려는 창조의 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은 자기의 모든 것, 천 퍼센트, 만 퍼센트라도 투입해서 자기보다 백 배 천 배 훌륭한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려고 하는 데에서 참사랑은 출발하기 시작하느니라! 「아멘」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이예요. 문선생이 천신만고 고생 끝에 찾아보니 결론이 그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기의 기압을 보면, 저기압권이 되어 가지고 완전히 진공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여기에 대비되는 고기압권은 자동적으로 순환운동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완전히 진공상태가 되게 되면 완전히 순환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또 완전히 주게 되면 무한한 회전운동이 발생합니다. 여기에서 참사랑을 중심삼은 영생의 논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영생이 어떻게 생겨나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을 할 거예요? 하나님의 참사랑, 천년 만년 투입하고도 잊어버리는 거기에는 무한한 힘이 순환운동과 더불어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 세계를 점령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 세계의 치리를 받았으면 받았지 그 세계를 막을 자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 앞에는 하나님도 무릎 꿇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발견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절대 복종하고 절대 희생하고 싶은 사랑의 길을 가고 싶어하고, 그것을 추모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하나님이 그렇지 않다면 논리적으로 하나님은 기쁨도 모르고 슬픔도 모르는 하나님이 돼야 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무슨 슬픔이 필요해요? 슬픔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오늘날 기성교인들 신학적 폐단이 그거예요. 어쩌다가 기독교문화권이 전부 다 개인주의 왕국이 돼 버렸어요? 절대적인 하나님과 나만 하나되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보는 거예요. 절대적인 개인주의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상대적 이상권이 없어요. 사랑은 만우주의 공존적 근거요 요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하나님의 창조원칙을?

그렇기 때문에 재창조의 과정으로 나가야 할 우리 타락한 인간이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뭘 알아야 되느냐? 문제는 그거예요. 하나님을 알고 영생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사회악을 전부 다 일소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나라의 구성법, 천리의 모든 헌법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아는 거예요. 그다음에 영생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 영생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참사랑에서 나옵니다. 참사랑이 뭐냐? 위하고 위하고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그것을 계속하는 데 참사랑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영계에 가게 되면 안 통하는 데가 없습니다.

보라구요. 그 말이 맞느냐, 아니면 그것이 실용성 없는 가공적 공상이냐? 천만에. 아닙니다. 여러분의 친구가 백 명이 있다 합시다. 누가 그 백 사람의 중심 존재가 되느냐 하면 백 명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친구입니다. 알겠어요? 열 명을 위해서 살겠다는 사람은 열 사람의 중심 친구가 되고, 백 명을 위해서 살겠다는 사람은 백 명의 중심 친구가 되는 거예요. 영원히 그 백 명의 친구를 위해서 살겠다 하는 사람 앞에는 그 친구들이 종의 자리에 서더라도 불평이 없는 것입니다. 불평이 없다는 거예요. 또 부부생활에 있어서도 내가 완전한 사랑의 절대적인 사람이 한번 돼 보고 싶다 하는 부부생활이 이상적 부부생활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랑은 사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자기를 위하는 사랑이 아니예요. 상대를 위하는 사랑입니다. 상대 창조 이상의 기원이 이렇게 출발했기 때문에, 이 본연적 출발의 기원의 내용을 가진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는 반항할 자가 없습니다, 이 존재의 세계에서. 왜? 모든 존재세계는 쌍쌍제도로 돼 있습니다. 인간도 남자 여자, 동물도 수놈 암놈이지요? 곤충도 수놈 암놈이지요? 나비도 새도 개미도 전부 다 그렇고, 광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광물도 원소가 107개나 되지만 그것이 함부로 합하지를 않아요. 자기의 상대가 되는 것은 합하지 말라고 해도 합하는 거예요. 플러스 플러스 서로 반발하는 것은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못 붙입니다. 그러나 상대성이 되면 붙지 말라고 해도 자동적으로 붙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참사랑의 줄을 인간에게 주고 쭈욱 잡아당기게 되면 천국왕궁으로부터 지상왕궁으로부터 천국사람으로부터 지상 만물세계까지 전부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도 참사랑에 화합할 수 있는 요소를 가졌기 때문에 그 세계에 들어가게 되면 바위보고도 말하고 만물과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