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림픽대회와 모스크바 대회의 섭리적 의미
한국에서는 거기에 대치해서 올림픽대회를 중심삼고 전세계의 2세들, 가인권을 대표한 모든 나라들의 2세들이 왔을 때 이들을 우리 선교사 120명과 하나 만드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맥콜을 갖다 주고 선물도 주고 이럼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우리 선교사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그래서 외적인 사탄세계 2세와 내적인 통일세계 2세들─선교사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2세들입니다─을 하나 만드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또 선생님은 올림픽대회에 있어서 영적 기준을 세우는 책임을 했습니다. 그때 올림픽대회의 전체 경기종목을 하나도 빼지 않고 본 사람이 선생님입니다, 텔레비전 세 대를 놓고. 그런데 그때 재미있는 것이 뭐냐 하면 소련과 동독이 1등 2등을 했고 미국과 한국이 3등 4등을 했는데, 미국과 한국이 한 3등 4등은 민주세계에서는 1등 2등입니다. 소련과 동독은 공산권 가인 아벨이고 미국과 한국은 민주세계의 가인 아벨입니다. 이래 가지고 한국이 4위를 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입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그런 결과를 가져왔던 것은, 하나님이 보호하사입니다.
이런 관계가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민주세계의 승리의 기준을 한국과 연결시켜 가지고 올림픽대회와 연결시킴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가적 기준이나 세계적 기준으로 연결시켜서 1988년 9월 27일 통일식(섭리적 통일전환식)을 거행하고, 10월 3일에는 세계통일국개천일을 선포하고 식을 거행한 것입니다. 그거 생각나요? 「예」 이런 모든 것이 큰 문제였기 때문에 세계를 대표한 올림픽대회를 중심삼고 섭리적 통일전환식과 개천식을 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동·서독이 하나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동·서독이 통일된 때(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가 언제인가? 「11월 9일입니다」 내가 11월 17일에 독일에 가 가지고, 베르린 장벽에 가 본 날이 11월 19일이구만. 그러니까 그때가 올림픽 한 지 1년 후인가? 「예」 섭리의 방향이 고지를 점령하게 될 때 공산세계도 그 뒤를 따라서 전부 다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해 가지고 1990년에 모스크바대회를 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민주와 공산세계, 가인 아벨권의 연결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섭리의 뜻을 두고 볼 때 조건적인 기준에서는 세계의 정상권을 전부 거쳐가게 됐다는 것입니다.
소련이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까딱 잘못하면, 미국이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는 소련이 장자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장자권을 가져야 할 미국이 책임 못 하는 날에는 소련이 미국 대신 깃발을 바꿔 쥘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복잡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 본성적 열매를 맺은 청소년 윤락행위가 미국 사회에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윤락된 이 사회를 수습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군사력이나 정치력 가지고도 안 되고 교육의 힘 가지고도 시정할 길이 없는 어려운 사회 환경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즐길 수 있는, 말초신경의 자극을 따라 가지고 사망세계인 지옥으로 향할 수 있는 현세가 돼 버렸습니다. 이러한 미국을 구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 있어서 오로지 통일교회만이 그 처방 방법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련이 지금 어떤 입장이냐? 사탄권 가인의 자리에 섰지만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돌아서려고 합니다. 소련이 경제적 기준에서는 미국처럼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돌아서려고 하지만, 미국을 바라보게 될 때 미국 자체의 내부는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병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소련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환경 여건에 물들지 않고 이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끌고 가고 있는 단체가 통일교회라는 것을 소련이 압니다. 틀림없이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의 지도층들은 지금까지 선두에 서서 세계적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해 나온 레버런 문이 공산주의가 망하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걸 궁금해 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방안도 없이 반대했느냐, 무슨 방안을 가지고 반대했느냐? 이게 궁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 과학기술아카데미 같은 데서는 통일교회 원리를 전부 비교 연구했더라구요. 케이 지 비(KGB;국가보안위원회), 정치국 요원들과 과학기술학술원에서 전부 비판하고 연구해서 벌써 결론을 내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통일사상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스크바에 갈 때는 케이 지 비, 정치국, 대통령 자문위원 할것없이 그런 일련의 모든 바람이 고위층에 연결돼 있더라 이거예요. 고르바초프를 만나서 몇 마디 물어 봤더니 모든 내용을 훤히 알고 있더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모스크바에서 언론인대회를 했다는 것은 한낱 대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세계적 조직과 더불어 하나의 시범 케이스로서 그 국가 전체가 대회를 한 것이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회 전후를 중심삼고 한국에 왔다 간 언론사의 보도라든가 노보스티 통신의 보도, 텔레비전으로 방영한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단 시간에 선생님에 대해 선전한 그것은 세계적이었습니다. 소련 국민으로서는 레버런 문을 나쁘게 생각할 수 없는 이런 환경을 만든 것입니다. 선생님을 근대 사상세계에 있어서 자기들이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인물로 등장시킨 것도 소련 자체가 선생님과 통일사상에 대해서, 우리의 움직임에 대해서 케이 지 비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케이 지 비와 많이 부딪치고 그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