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아들딸을 길러 보지 못한 하나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08권 PDF전문보기

참된 아들딸을 길러 보지 못한 하나님

자, 하나님의 한이 뭐냐? 하나님은 아들딸을 길러 보지 못했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아들을 만나 보지 못했고, 하나님이 바라는 참다운 딸을 만나 보지 못한 하나님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느냐? 악마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손자가 없었습니다. 아담 해와를 무엇 때문에 만들었어요? 남자 여자를 만든 것이 무엇 때문이예요? 무엇을 위한 거예요?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사랑이 어디 있어요? 사랑이 하나님에게 있으면 여러분들이 사랑을 어떻게 해요? 하나님이 보여요?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손자를 못 가졌다는 것은 뭐냐? 하나님의 사랑을 못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의 생명의 결탁이 벌어져야 됩니다.

그래, 처녀 총각들이 데이트하고 `아이 러브 유(I love you)' 하면서 서로 끼고 다니는 것이 타락한 이후의 행동이예요, 타락하기 이전의 행동이예요? 「타락한 이후의 행동입니다」 타락한 이후 세계의 요사스러운 행동입니다.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완성된 아담과 완성된 해와의 결혼이 어떤 결혼이었겠느냐?

하나님이 사랑을 갖고 있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근본이지만 생명의 번식을 못 시켰습니다. 하나님도 손자가 보고 싶겠어요, 안 보고 싶겠어요? 「보고 싶습니다」 당신들도 결혼하면 아들딸 보고 싶지요? 아들딸을 가졌으면 그다음엔 무엇이 보고 싶어요? 「손자입니다」 손자예요. 여기 효율이 어머니도 있지만 옛날에 자기 자식 기를 때는 몰랐던 재미를 손자 기르면서 느끼지? 「예」

우리 어머니도 그래요. 이번에도 미국에서 올 때 손자 신원이를 안고 `아이고, 손자 하나 데리고 가요' 그래요. 왜 그러느냐? 자기 아들딸을 못 데리고 가니 손자라도 데리고 가서 아들딸이 보고 싶을 때 손자를 살살 만지면서 누구 대신 입맞춘다 이러면서 입도 맞추고 상징적인 사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건을 걸고 하는 사랑이 조건이 없는 사랑보다 맛이 더 있는 거예요. 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붙들고 춤을 추어 본 사람이라야 베개를 상징적인 자기 아내와 같이 생각해서 붙들고 춤을 추더라도 멋이 나는 거예요. 그건 죄가 아닙니다. 안 그래요? 자기 아내와 같이 생각한다면 베개 아니라 벽돌담을 안고 춘다 한들 어때요? 없는데 그러면 죄가 되고 가증스러운 것이 되지만 말이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진짜 잡고 싶었던 효자의 손을 잡고 `아들아, 네가 진짜 내 효자구나!' 그래 봤겠어요, 못 그래 봤겠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의 손을 잡고 그렇게 해봤겠어요, 못 해봤겠어요? 「못 해봤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딸 앞에 `아이고! 내가 천하를 주고도 또 주고 싶다. 나를 주고도 또 또 주고 싶다. 내 생명의 뿌리, 사랑의 뿌리, 모든 근본을 몽땅 주고 나까지 들어가서 거름이 되겠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거름 되겠다는 것이 죄예요? 그럴 수 있는 남편을 모시고 사는 아내는 복된 여자요, 성공한 여자지요. 또 `내가 당신 때문에 거름이 되어도 좋습니다' 하는 아내를 데리고 사는 남자는 불행한 남자요, 행복한 남자요? 「행복한 남자입니다」 우리 아가씨들은 행복한 남자를 만들 줄도 알고, 행복한 부인이 될 줄도 알지요? 알아요, 몰라요? 「압니다」 잘 배웠지. (웃음)

자기 마음대로 시집을 못 가기 때문에 선생님이 `너, 중국놈에게 시집 가!' 하더라도 `예이─! 바라고 바랐던 바입니다' 하고, `서양놈에게 시집가!' 하더라도 `그것도 바라고 바라고 바라고 바랐던 바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멀수록 점점 더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멀면 멀수록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어렵더라도 한국의 아내보다, 한국의 신랑보다 잘하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위대함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의 역사와 전통이라도 이 사랑 앞에서는 녹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미국 식구들 몇천 명이 한국 사람과 축복받아 가지고 가니까 시아버지 시어머니 눈에 불이 나서 `문 아무개 그놈의 자식, 우리 집에서 자가폭탄을 만들어 가지고 몰살시켜 버려야 되겠다!' 하고 별의별 욕을 다 했지요. 그런데 3년 4년이 지나고 한 10년 가까이 되니까 요즘은 자랑하느라고 입이 이렇게 째졌어요. 체면이 있지, 그렇게 욕을 했던 입이 같은 입장에서 어떻게 자랑해요? 그러니까 입이 이렇게 거꾸로 째져 가지고 손짓을 하면서 `훌륭한 문총재가 애국의 씨를 심어 주었고, 나라를 구할 구주의 씨를 심어 주었다!' 이러고 있다구요.

백인 할머니들은 낮에 봐도 딱 아귀 같아요. 아귀 요귀의 사촌 같습니다. 정말이라구요. 뼈다귀밖에 안 남은 하얀 얼굴에 눈은 새파랗고 손은 앙상해 가지고 요러고 앉아 있으면 꼭 아귀 할머니 같아요. (웃음) 보기에도 끔찍해요. 그런데 여러분의 언니들은 가 가지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에게 하는 것보다 더 잘하는 거예요. 뺨을 비비고 말이예요. 그 사람들은 뺨 비비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러고 살다 보니 세상에 아시아에서 온 며느리, 손자며느리 이상 좋은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문중에 소문나기 전에 집안에서부터 소문나야지요? `야! 요게 제일이다. 어쩌면 새까만 눈이 그렇게 재미있어? 들여다봐도 봐도 모르겠다' 한다는 것입니다. 새파란 눈은 한 30분만 들여다보면 싫증이 나는데, 이건 1년을 들여다봐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꾸 들여다보는 거예요. 그래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한 10년을 들여다봐도 연구할 문제다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야, 우리 손녀 손자들도 저런 눈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러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새파란 눈의 애기가 나오면 `아이고, 내가 기도를 잘못 했구나! 새까만 눈이 나와야 할 텐데!' 한다는 것입니다. 그랬다는 말을 내가 보고를 통해 듣고 있습니다. 거룩할지어다! 「아멘」

그때는 할머니들이 `아멘' 하면 안 돼요. 꽃다운 처녀들이 `아─멘!' 해야 되는 거예요. 할머니들이 아무리 `아멘' 해야 가당치 않지요. `아멘'이라는 말이 `말씀대로 되시옵소서' 하는 것인데, 할머니들이 이 말씀대로 되면 요사스러운 사판이 벌어지잖아요? 처녀 총각들이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아! 그렇고 말고. 아! 멋지고 좋지! 아! 천하에 내가 제일이구나!' 이래 놓고 `아─ 멘─!' 해야 되는 거예요. (웃음) 한번 해봐요. 아─ 「아─」 멘─! 「멘─!」

여기, 시집 갔어요, 안 갔어요? 축복 받았어, 안 받았어? 「받았습니다」 받은 녀석들이 왜 그래? (웃음) 축복받지 않은 처녀들보고 그러라고 했는데 왜 축복받은 간나들이 그러고 있어? 기분 나쁘게. 또 턱이 높은 데 올라 앉았구만. (웃음)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내 손을 붙들고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해와를 이렇게 사랑하지 못했다' 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기쁨과 눈물은 통하지요? 슬픈 것하고 눈물도 통하지만, 기쁜 것하고 눈물도 통하는 거예요. 기뻐도 눈물이 나오지요? 「예」 슬프면? 「눈물 나옵니다」 그래, 어떤 것이 좋은 거예요? 「기쁜 것이 좋습니다」

기쁨과 슬픔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 있어도 그 슬픔을 기쁨으로 소화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봄철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사랑하는 남편에게 겨울이 찾아오면 박자가 안 맞는 거예요. 그럴 때는 남편에게 봄을 맞게 해 주기 위해서는 아내가 봄동산의 꽃 중의 꽃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겨울에 핀 봄꽃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남편은 겨울에도 봄꽃을 맞이해 가지고 찬란하게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반대받는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고생하면서 한 공부는 잊어버리지 않지만, 편안하게 공부한 것은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고생이 나쁜 게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소년시대부터 청년시대까지 고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