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경지에 서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57권 PDF전문보기

무의 경지에 서야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은 불쌍하며 쓸쓸합니다. 알겠습니까? 죽어도 구해야 할 것은 남자입니다. 여자에게는 말이죠. 죽고 사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자기 남편입니다. 여자 혼자 살아 보세요. 지나가는 까마귀마저도 '이놈, 언젠가 빨리 죽은 경우에는 내가 빨리 처리해야지' 합니다.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여자는 남자를 중심한 상대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뭐라고요? 사랑이에요. 그 사랑은 영원히 중심이 된다 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영원히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 일체권으로서 같이 잊어버리면서 상대를 자기보다 더 존중하면서 발전해 갑니다, 이상세계까지. 얼마나 멋있는 이상입니까? 알겠습니까?「예.」

하나되었을 때는 느끼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은 무엇을 위해? 보다, 100퍼센트 이상의 자극을 받기 위해. 그래서 태풍을 말했지요? 제로점이 된 경우에는, 그것은 마이너스 몇 도가 된 경우에는 폭발적인 태풍이 불어와 가지고 거기에 있는 물건을 팍 눌러서 그 태풍의 품속에 전부 넣어버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걸작입니까? 위로 된 것이 한꺼번에 가운데로 되고, 가운데로 된 것, 밑에 있던 것이 한꺼번에 위로 되어 전체를 커버합니다. 그 이상 걸작인 것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예」

그러므로 여러분들 무의 경지에 서야 합니다. 여자는 여자로서 자기의 의식까지, 존재의식까지 잊고, 남자 인식 존재권을 생각하면서 거기에 돌입하기 위해 살게 될 경우에는 남자가 차 버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여자를 가졌다고 할 경우에는 어디에 가서 구하더라도 그런 여자가 없게 될 경우에는 세계를 돌아보고는 자기의 품에 돌아옵니다. 여러분도 그런 남자를 원합니까? 그런 남자를 원합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결혼 안 했어?「예.」지금부터, 장래에 할 것이잖아? 무슨 말인가 모르겠어? (웃음) 몇 시 되었어, 스도(周藤)?「예, 2시 20분입니다.」

자기를 찾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필요하고, 그리고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나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에요? 나쁜 사람은 어디에서 괴롭힘을 당해요? 그 나쁜 사람이 양심이 나쁩니까, 육신이 나쁩니까? 어느쪽이 나빠요?「육신.」나쁜 것을 알고 있지만 어느쪽이 더 나빠요? 육신이에요. 육신에 연결된 오감이라고 하는 것이 나쁩니다. 그것이 양심의 반대 각도를 향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양심은 틀림없는 선생입니다. 부모보다도, 선생보다도, 일생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형님집에 처음으로 와서 자는데, '형님의 어느 옷장 속에는 보자기가 있는데 그 안에는 많은 보석이 있다. 반지라도 좋고, 목걸이라도 좋으니 많이 있으니 하나 정도 가져도 좋겠지」해 가지고, 보석상자에 손을 대면「이놈 물어 보고 해」해요, 안 해요? 물어 보고하지 않으면 도둑이 된다 해 가지고 양심이 두근두근 하는 거예요. 그런 거 느낍니까, 느끼지 않습니까? 선생님보다도 훌륭한 선생입니다. 부모보다도 더 자기를 지켜 줍니다.

그 양심을 생애에 얼마나 무시했느냐? 자기를 만년 평화의 땅, 이상향에 이끌기 위해 지도하는 중심성으로서, 안테나를 세우고, 저기 본향의 안테나와 방향을 일치시키고 있는데, 거기에서 전파를 끊으려는 거와 같은 일을 누가 합니까? 이 몸이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잘라 가지고 양심을 많이 울리고 마는 것입니다. 양심을 울리지 않았다고 하는 자신이 있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귀여운 얼굴을 했다고 자랑하는 여자는 많이 있겠지만, 양심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끔 하지 않았다고 하는 여자가 있다면 손 들어 보세요. 양심이 웁니다.

'싫다, 싫다!' 하고, 거기에 갈 때마다 그것을 근심하는 것입니다. 걱정, 걱정, 생애를 걸고, 일생 동안 걱정을 하고 염려하는 길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을 알고 양심의 해방권을 자기가 찾기 위해 노력한 적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가르친 선생도 없고, 부모도 없고, 왕도 없고, 주인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선생에 의해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양심을 울린 육신의 아픔을 어떻게 처분할까. 그 양심이 강하면 좋은데, 왜 이것은 저 육신에 끌려 다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이렇게 되지 않도록 하면 좋을 것인데,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걸 생각하면 하나님이 없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고장이 났든지,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내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왜 양심의 힘보다 그 육신의 힘이 강하게 되었느냐? 그것이 약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양심권의 선한 자신이 발전했을 텐데 말이에요. 양심보다 육체가 나쁘므로 이 나쁜 것에 포위되고 만 결과를 어떻게 해방할 것이냐? 양심이 좀더 강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나님이 있다면 그렇게 만들었어야 할 것인데 이렇게 된 걸 볼 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을 적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