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양자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참하나님

② 양자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구약시대를 지나 신약의 새아침을 맞으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선언했고, 타락인간들을 양자의 자리로 올려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지어 주셨습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릅니다. 그러나 오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접붙임을 받음으로써 아들의 명분을 갖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자관계의 수립은 예수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이룩할 수 없는 천비(天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당시 구약의 관념에 젖은 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한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아버지 신관(神觀)은 혁명적인 신관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단계 높여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모세가 사랑의 하나님은 소개하지 못하고 권세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만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을 소개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했고 사랑의 예수님을 소개했지만 당시의 인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35-277, 1970.10.25)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였으므로 하나님의 바른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사랑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므로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복수하던 구약시대의 율법은 사라지고 예수님에 의해 원수를 사랑하고 형제의 허물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시는 사랑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어찌 자식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하나님은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나타난 존재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거하시니 나를 보았은즉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하나님을 보여달라 하느냐` 하고 하나님과 일체를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받고 하늘이 열린 때부터 승천하기까지는 3년이란 짧은 세월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부자지관계의 신관을 천명해 놓고 구체적인 내용은 다 말 못하고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의 메시아로 와서 세계적 메시아 노정을 개척하다가 죽었다 이겁니다. 그러면 유대교는 어떻게 되느냐? 지금까지 유대교만을 위하는 하나님으로 모시는 그 하나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가르쳐 줘야 할 것이 뭐냐? 구약성경에서 가르쳐 준 하나님을 그냥 그대로 가르쳐 줘서는 안 됩니다.

신약시대의 하나님으로 가르쳐 줘야 합니다. `국가적 차원의 시대를 넘어서 이제는 세계적 차원의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세계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 공들이는 터전을 닦아야 되겠다.` 이렇게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이스라엘의 국가적 메시아로 온 예수님의 사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생애를 바쳐 세계적 메시아의 권위를 찾는 것이 예수님의 생애에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105-215, 1979.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