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참아버님이 본 하나님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참하나님

제 4 장 참아버님이 본 하나님

1) 역사적인 원, 한, 고통의 하나님

① 인간 타락으로 부모의 자리를 잃어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는 하나님인데, 사탄이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려 한다.`라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의 피를 받은 분통한 사실을 알았으면 분한 마음이 솟구쳐 내 몸을 칼로 찔러 더러운 거짓 피를 빼 버리고 싶은 의협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까? `이놈의 고깃덩이!` 하며 몸을 치면서 분통해하는 사람이 하늘의 충신입니다. (11-243, 1961.10.29)

최후의 심정의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종교라면 하나님이 제일 불쌍하다는 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는 종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고 훌륭한 것만은 아닙니다. 불쌍하고 억울한 하나님, 분통하고 한이 넘치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는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51-102, 1962.10.28)

하나님이 얼마나 분통하냐 하면, 왕좌를 원수한테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이 영광의 하나님이 못 되어 설움의 역사를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나라의 왕으로, 우주의 왕으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왕이 살아 있는데도 죽었다고 천대를 받고 계십니다. 자기의 이상을 겁탈당하고,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다 겁탈당하고 완전히 원수의 농락터로서의 지구성이 돼 버렸습니다. (105-199, 1979.10.21)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통일된 민족이나 주권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위신을 가려 행차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할 것이 통일가의 아들딸의 도리요, 통일가의 효자의 도리요, 통일가의 충신의 도리요, 열녀의 도리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놓아 줄 것이다! 아는 사람은 해방이다! 이것을 똑똑히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56-330, 1972.5.18)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하나님이 하신 수고 앞에 대신 수고하기 위해 사지가 찢기는 길이라도 찾아가려고 발버둥쳐 봤느냐? 못해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라는 그 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인 나를, 혹은 우리 조상을 잃어버렸을 때 당신의 마음에 얼마나 슬픔이 사무쳤습니까? 그 후손을 통해 지금까지 역사 과정에서 당하시던 수욕과 고통과 극난한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라고 위로해드리면서 무한히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권한으로 온 세계와 사탄까지도 심판해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인데도,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도 그렇게 수고하는 입장에서 손을 대려야 댈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이 가져야 할 환경을 갖지 못한 채 고독단신으로 사탄 앞에 참소받고 사탄세계에 발판을 몽땅 빼앗기고 신음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입장을 동정하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문제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51-111, 1971.11.18)

세상의 부모도 자기 아들딸이 죄를 지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면 자식이 죽기를 원하는 부모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식을 살려줄 수 있으면 백 번 천 번 살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어머니 마음이 더 그렇지요? 타락한 세계의 여인의 마음도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끝날에 가서 심판을 해버려야 되느냐? 하나님이 왜 용서를 못해 주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은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예수가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한다면 하나님은 일흔 번씩 칠천 번 이상 용서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48-236, 1971.9.19)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인데, 복귀섭리의 출발이 아담과 해와부터였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해서입니다. 선생님이 나타나기 전까지 아담 복귀를 못한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 전지전능하고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하나의 남자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수천만 년을 피조세계에 얼굴을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한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37-27, 1992.11.10)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창조이상 완성인데, 창조이상은 우리 인간세계에 삼대상권 이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고 이상이 실현될 때 하나님이 `아이고! 나 행복하다.` 이러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갖고 행복하다 하겠어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보좌 위에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는 전지전능하시니 `여보게` 할 때 `예이` 하면 만사가 통할 줄 알지만 언제나 혼자이신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해요? (170-97, 1987.11.8)

사랑하는 아들을 그렇게 죽일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딱한 사정을 누가 알았겠느냐? 그것은 성경에 없습니다만, 아들을 죽일 수 있을 만큼 딱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기독교의 예수를 믿겠다고 그렇게 아둥바둥 모이는 것도 비참한 일입니다.

모든 선민의 편이 돼야 할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는 곳마다 피를 흘리고 모가지가 떨걱떨걱 떨어지지 않나, 기름에 튀겨 죽이지를 않나…. 이러한 운명에 부딪치는 것을 보고 `아이구, 하나님은 막을 수 있지 않소` 하겠지만 전지전능하면서도 그 권한의 행사를 참아야 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한이 맺히겠어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최고로 높으냐 이겁니다. 언젠가 한번 깨끗이 청산해 버리면 좋겠습니다. (64-222, 1972.11.12)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투입하고서라도 보호하고 싶은 것입니다. 본래 창조이상이 그렇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아들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생명까지 투입해야 되는 슬픈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206-26, 1990.10.3)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영원한 주인이 될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사대부의 집 담 안에 숨어 있던 딸이라 하더라도 그 동네의 깡패 자식이 겁탈해서 사랑관계를 맺었다면 그 딸이 누구의 것이 돼요? 깡패 것이 되지요? 딱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하늘나라의 왕이 될 수 있는 아담이었고, 하늘나라의 왕후가 될 수 있는 해와였습니다. 이것을 복귀하는 데는 창조의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원래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영원한 사랑의 법도를 세웠기 때문에 그 법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 법도를 부정하게 되면 천리를 파괴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물론 하나님 자체까지 부정당할 수 있는 입장에 들어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이 재창조 과정을 통해서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한 많은 역사노정을 누가 알았습니까? (207-272, 1990.11.11)

오늘날 기성교회는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있는 심판주로서 지옥 보내고 천국 보낸다.` 하지요? 세상에 제일 불쌍한 분이 하나님입니다. 제일 비통하게 몸부림치면서도 광명한 천지가 흑암의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는 그것을 극복하고 거기에서 몸을 가누어 눈을 뜨고 의식을 갖추어서, 죽었지만 이놈의 자식들을 다시 살려 놓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창조주의 능력, 절대자의 힘이 있었으니 그것이 가능하다 생각하지, 그렇지 않으면 다 끝장나는 것입니다. (232-114, 1992.7.3)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본연적 참부모의 자리에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참부모가 되어야 할 하나님이 부모의 자리를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창조이상의 본연적 기준에서는 없었던 일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 창조적 세계에 있을 수 없는 것이 생겨난 것을 창조주 되신 하나님은 간섭할 수도 없고 그걸 책임지고 소화할 수 있는 입장에도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40-164, 199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