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의 사랑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참가정

4)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의 사랑

사랑은 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생명이 투입되지 않고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관계의 사랑을 두고 보더라도 거기에는 생명의 인연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의 인연이 남아 있는 한, 생명의 인연 속에서 소원을 갖고 있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의 인연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인연을 떠나가지고는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반드시 생명의 인연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생명을 얼마만큼 투입해가지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보다 가치 있게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냥 그대로 생활적 인연만을 통해서 하는 사랑이 아닌, 뼛골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인 것입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을 부모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여력이 남아 있는 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식과 생명의 인연이 맺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부모에게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저 애는 내 아들이니까 사랑하겠다는 의식적인 마음이 앞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보다도, 그 인연보다도 앞선 자기의 생명력이 자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이 가정생활에서 잘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32-14, 1970.6.14)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할 때, 천년만년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지, 주고 나서 `야, 요거 몇 냥 몇 전이다.`라고 하시는 장사꾼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만민은 왜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따라가야 하느냐?

하나님을 왜 좋아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만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시고 또 주시면서도 부끄러워하시며 `지금은 이것밖에 안 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몇백 배 몇천 배 더 좋은 것을 줄 터이니.` 하시면서 오늘 현재에 주신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면서도 미래에 더 좋은 것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시며 주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과 더불어 있으면 비록 못 먹고 못살더라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못 먹는 자리에 들어간다면 미래의 소망 된 자극이 현실권 내에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도리어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자리, 그런 부모를 가진 자식이 `엄마` 하고 끌어안게 되면 몸만 끌어안겠습니까?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 자리는 미래를 위해 서로 위로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절망이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현재의 자극으로 여기고, 서로 결의하고, 서로가 맞부딪쳐가지고 격려할 수 있는 폭발적인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자극을 끌어들여가지고 현실권 내에서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자리는 그러한 사랑권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랑권 내에 사는 사람은 불행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36-291, 1970.12.13)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에 대해서 전체를 희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투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있겠다는, 상대를 위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있겠다고 하면, 그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를 전부 다 자식한테 희생해가지고 그 자식과 더불어 있겠다고 하는 데서 사랑이, 생명이,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69-62, 1973.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