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참가정

5)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새 둥지를 많이 보았습니다. 새 둥지를 보려고 올라가 보게 되면 어미가 와서 쪼아댑니다. 결사적입니다. 한 번만이 아닙니다. 쳐 버리면 맞고 날아가면서도 또 옵니다. 이걸 볼 때, 자기 생명을 넘어서 사랑하는 새끼를 보호하려는 동물세계의 힘이 있는 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생명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진짜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사랑을 뿌리로 해 자기 생명을 던져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거기에는 주체적 선이 있는 것이요, 상대적 선의 논리를 세울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입니다. (186-18, 1989.1.24)

내가 미국 댄버리교도소에 있을 때 재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탈길을 테니스 코트로 닦기 위해 매일 불도저로 미는 작업을 했는데, 오랫동안 했습니다. 작업을 하다가 중지하기도 하고, 또 우기(雨期)가 되면 건기(乾期)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 두서너 주일 우기가 지난 후 작업을 하는데, 거기에 물새가 새끼를 쳤습니다. 그 곳에는 죄수들이 운동삼아 걷는 코스가 있는데, 거기서 불과 3미터 떨어진 곳에 물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 물새 빛깔이 얼른 봐서는 알아볼 수 없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 보호색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모릅니다. 알을 낳아 까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다니면서도 몰랐습니다. 엎드린 모습을 옆에서 보면 까만 자갈돌 빛깔 같은 보호색이어서 몰랐습니다. 그러다 새끼가 부화되어 뭘 물어다 먹이다 보니 소리가 `찍찍` 나게 되어 다 알게 됐습니다. 짓궂은 녀석들은 별의별 놀음을 다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물새가 자기 새끼들에 대해서 얼마나 보호력이 있는가 하면, 먹이를 구해서 물고 올 때 절대 자기 새끼 가까이 날아오지를 않습니다. 딴 곳에 내려서 새끼 있는 곳까지 기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매일 방향이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향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끼를 키웁니다.

이 새끼들이 점점 자라게 되면 사람이 그 옆에만 가도 어미가 쪼아대며 야단입니다. 새끼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쳤느냐? 그게 우주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축으로 하여 모든 물이 평면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위치는 낮지만 그 평행선상의 기준은 변함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136-23, 1985.12.20)

꿀벌이 꽃송이를 찾아다니다가 꿀맛을 봤다 하게 될 때에는, 다리로 파고 들어가서 꽁무니를 떡 내밀고 빨아먹습니다. 선생님은 벌에 대해 잘 압니다. 꿀맛을 보는 벌을 핀셋으로 잡아당기게 되면 꽁지가 쑥 빠지더라도 안 떨어집니다. 참사랑은 그런 사랑입니다. 자기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계산해서 얼마 이익이 되니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까지도 버리면서 잊어버리고 갈 수 있는 길이 참사랑의 길입니다.

부모는 그 길을 갑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이 사지에 들어가게 되면 자식을 위해서 죽을 자리에 가려고 합니다. 사랑 앞에 자기 목숨을 묻고 가려고 하는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그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144-210, 1986.4.24)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자랑할 수 있는 금은보화를 가졌고, 피땀 흘려서 엄청난 재산을 모았는데, 자식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면, 그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생명까지 희생시켜서라도 살리려고 합니다. (34-161, 197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