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대부분의 생애들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지상생활과 영계

② 대부분의 생애들

지금 우리는 알든 모르든 어느 곳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내가 움직이는 시간에도 가고 있는 것이요, 쉬고 있는 시간에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단 나뿐만 아니고 이 민족 혹은 이 세계, 더 나아가 하늘과 땅까지도 어떠한 곳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생을 거친 후에 나는 어떠한 곳으로 갈 것인가? 이것이 인간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종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철학도 역사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동원돼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도 이런 운세에 사로잡혀 이끌려 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차피 가야 할 내 자신이라 할진대, 이 몸은 어디로 가려고 하고, 이 마음은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또, 이 생명은 어디를 향하여 기울어지고 있으며, 내 심정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내 소원 혹은 소망과 이념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차피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죽는 날, 이 몸은 흙에 묻힘으로써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묻히는 그날 이 마음도, 이 생명도, 이 심정도, 이 이념도, 혹은 소원까지도 같이 묻혀 버리고 말 것인가? 여기에 내용과 해결점과 확실한 목적관을 제시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는 걸음을 붙잡아 놓고, 움직이는 마음과 기울어지는 심정을 막아 놓고 `너는 어디로 가느냐` 이것을 물어보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싸워 나오는 사람들이 성현?현철이요, 수많은 도주(道主)들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왔지만 지금까지 `내 몸은 이러한 곳으로 갔으며, 내 마음과 내 심정, 내 생명과 내 이념은 이런 곳을 향하여 달렸노라. 그러니 온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물은 이곳으로 가라!`고 자신있게 명령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8-194, 1959.12.20)

종교는 사적인 욕망에서 출발된 이 세상이 망하기를 소원합니다. 공적인 세계, 하나로 통일된 평화의 세계를 수천 년 전부터 고대해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자기 부부가 재미있게 사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것은, 이 역사적 거리를 단축시켜 세계와 연결시키고, 천주와 연결시켜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해방된 가정입니다. 또한 그 가정은 절대적인 가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명동거리를 지나다 보면 젊은 남자 여자들이 깨가 쏟아집니다. 그거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 겁니까? 한 번밖에 없는 청춘시대를 즐기기 위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좋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즐기는 데 주인이 누구냐? 이게 심각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언제까지 즐길 수 있느냐? 20대부터 즐겨 60, 70, 80살이 지나가게 되면 즐길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식은 다릅니다. 먹는 것도 무엇 때문에 먹습니까? 세계를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를 없애기 위해 먹는 것입니다. 보는 것도 악한 세계를 소탕하기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악의 편이 되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악을 소탕하기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듣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걷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전부 다 세상과 다릅니다. (36-72, 1970.11.15)

만일 사람을 며칠 동안 있다가 없어질 그런 존재로 창조했다면 하나님은 절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원히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귀한 존재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대상일진대, 하나님이 영원하다면 인간도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은 영원한 세상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80년 살았으면 됐지. 죽어 버리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나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역사노정을 통해 생각을 깊게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을 것인가? 더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뜻을 품은 사람일수록 `인생이 무엇이냐? 인간은 왜 왔다가 나그네같이 가느냐` 하며, `인생은 고해`니 `초로(草露)의 인생`이니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생할 수 있다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39-229, 197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