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두 가지의 죽음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지상생활과 영계

④ 두 가지의 죽음

여러분이 아무리 죽지 않겠다고 해도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는 사람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의 명대로 살고 가는 사람과 자기의 명대로 못 살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명대로 못 살고 가는 사람에도 벌을 받아서 빨리 죽은 사람과 민족이나 세계의 죄를 탕감하기 위해 빨리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어떠한 동네에 손꼽히는 젊은이 세 사람만 죽게 되면, 그 동네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문중이면 문중에서 기대를 받던 젊은이 세 사람만 죽게 되면, 그 문중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즉 탕감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든 그렇습니다. 인과법칙은 어디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천 사람의 가치를 지닌 한 존재를 중심적인 자리에 세워서 대신 죽음의 길을 가게 했을 때, 천 사람이 그 사람의 은덕 앞에 감동하여 그 사람을 위하고, 그 사람의 생애를 본받고, 그 사람처럼 살겠다고 하게 되면, 그 민족은 그 사람과 같은 혜택권 내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충신의 사상을 본받으려 하고, 성현의 사상을 본받으려 하는 것도 그들과 같은 혜택권 내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여러 사람이 영계에 갔지만 금년에도 여러 사람이 영계에 갈 것입니다. 말은 안 했지만 선생님은 벌써 다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한 단계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탕감을 치러야 되기 때문입니다. (33-10, 1970.7.28)

이 땅 위에 태어난 인간들 가운데는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소망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망은 인간을 중심삼은 소망과 하늘을 중심삼은 소망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그날부터 어머니 품속이 그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자라지만, 어머니의 품을 떠나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 친구들이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지냅니다. 그러나 결국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점점 자라면서 사랑하는 부모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되고, 사랑하는 부부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자녀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많은 것을 소망하지만 그 마음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에 대한 소망, 혹은 국가에 대한 소망,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연령이 많아짐에 따라 그 소망하는 마음이 점점 약해져 갑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 중에는 그 소망을 자기 전체 소망으로 자랑하고, 자기의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다가 최후에는 죽음과 싸워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봉착하게 됩니다. (6-44, 1959.3.22)

인간은 일생 동안 온갖 소망을 품고 살지만, 나중에는 죽음에 부딪쳐 자기가 품었던 소망 전부를 다 버린 채, 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살기를 바라고 내일도 살기를 바라며 새로운 소망을 찾아 헤매고 있으나, 죽음에 부딪치게 될 때에는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절망하면서 최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중심삼고 볼 때는 소망을 가진 듯하나 죽음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소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생의 본으로 알고 죽어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죽음도 비웃고 하나의 소망을 찾아갈 것이냐? 이것이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세상만사는 다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가정도 지나가고 국가도 지나가고 세계 혹은 어떤 주의도 다 지나가는데, 최후에 남겨지는 것은 무엇이냐? 죽음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소망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소망이 없다면 인생의 패배자입니다.

반면에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일체의 소망을 거부하고, 인간적인 것 일체를 거부하고 하늘의 소망,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사는 무리도 있습니다.

하늘은 인간적인 소망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지상의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소망을 갖고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고, 영원한 세계를 흠모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땅 위의 어떤 소망을 품고 살 것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꿈꾸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45, 1959.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