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천국에 대한 바른 관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지상생활과 영계

⑧ 천국에 대한 바른 관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죽고 망하더라도 `이 신념만은 틀림없다. 내가 틀렸으면 틀렸지 뜻은 틀림없다!`고 하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아침의 신앙과 저녁의 신앙이 다른 신앙 자세를 지니고 있으면서 천국을 그린다면, 그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천국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냐? 자기를 생각하는 자리에서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천국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라는 것을 타파해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공격하는 데서만이 천국, 혹은 간접적인 천국이라도 개방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자기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상대방을 자기에게 적응시키려 하는 사람, 자기 스스로를 주체적 입장에 놓고 상대방을 끌고 가려는 사람은 천국과 관계를 못 맺습니다.

분명한 것은 천국은 나로부터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상대적 천국이 완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천국이 부를 때에 화답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못 되어 있으면, 그 천국과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사탄을 극복한 자리입니다. 자신을 극복한 자리가 아닙니다. 자체만을 극복한 자리가 아닙니다. 타락한 세계권, 습관적인 환경권 혹은 상습화한 자리에는 천국이 임할 수 없습니다. 이 상습화한 환경을 사탄이 고질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이 여기에 우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탄의 환경을 극복하고 나야만 천국이 오는 것입니다. 천국은 사탄세계의 내용과 상반된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만일에 그렇지 않다면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천국이라는 이름이 붙었더라도 그것은 환경을 농락하기 위한 속임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개념은 사탄을 극복한 자리에서, 사탄이 상대할 수 있는 일체의 요인을 부정한 자리에서, 부정할 뿐만 아니라 청산지은 자리에서 성립될 수 있습니다. 사탄의 부정적 여건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유물이라든가 생활의 모든 내용을 부정하고 청산지은 터전에서 천국이 긍정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을 남기고는 천국의 내용을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고귀한 것입니다. 절대적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는 천국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그리는 천국의 개념은 너무나 혼잡합니다. 너무나 삿(邪)된 입장에서 천국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환경에서 절대적인 신앙 기준을 가지고 극복하는 데서부터 천국이 비롯되는 것은 틀림없으나, 그것만으로 천국이 결정될 수는 없습니다. 그 터전에서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을 수고시켰고, 수많은 인류를 농락한 사탄을 극복해야만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순순히 믿고만 가는 자리에서 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믿는 마음만 가지고서는 절대로 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탄이 언제나 싸움을 제시하기 때문에 싸움노정을 극복해야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주권이 있어야 하고, 수많은 백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국가면 국가 체제를 이루어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극복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서로서로 상충이 없이 주체와 더불어 어느 때, 어떤 곳에서라도 화합하고 화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믿는 자리에서는 마음에 임재하는 천국을 느낄는지 모르지만 실체적인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2천 년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순교와 수난의 대가를 치르고도 현실무대에서 천국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천국은 그렇게 간단히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46-74, 1971.7.25)

성경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주`라는 말은 영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절대적인 내용을 갖춘 자리에서 인식할 수 있는 말입니다. 주 하나님을 믿는 데서 천국이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천국이 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사랑하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믿는 데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미급했고 원칙에 도달하기에 얼마나 먼 거리에 있었느냐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혹시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을 중심하고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온전한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개인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져 개인을 중심삼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해서 천국이 되느냐? 그것이 개인의 천국은 될는지 모르지만 전체 천국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개인의 천국이 아닙니다. 개인이 성립시킨 천국을 바라보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천국이 다 되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기뻐할 수 있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낸 것은 그를 중심으로 만국을 횡적으로 연결시켜서 전체 천국을 모색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서 희생시킨 것입니다. (46-76, 197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