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국 가기 위한 준비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지상생활과 영계

2) 천국 가기 위한 준비

① 천국의 거점(據點)

우리가 진리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진리에 심취될수록 그 진리는 더욱더 어느 누가 빼앗아 갈 수 없는 우리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천만 번 혼란되는 땅일지라도, 우주가 불시에 파괴될지라도, 중심을 마음에 확실히 세운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고, 동요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그런 중심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있지 못하면 아무리 참된 진리가 나타나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참된 생명이 나타나도 알지 못하며, 참된 사랑이 나타나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교가 참된 진리와 참된 생명, 그리고 참된 사랑을 찾고자 한다면 끝까지 자기를 버리고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지구는 새로운 대륙들이 발견되어 점점 더 넓어지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문명이 발달되지 못한 때에는 세계가 넓은 것같이 느껴졌지만 역사가 흐르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계는 점점 좁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진리의 역사를 거쳐 이루어질 이상세계는 모든 것이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우주적인 시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인의 기준, 즉 천국의 생명과 천국의 사랑은 우리 자체에서 결실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리와 생명과 사랑은 한 가정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진리에는 반드시 사랑과 생명이 따라야 되는 것이고, 사랑에도 생명과 진리가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놓고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도 사랑과 진리가 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과 사랑은 왜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가? 하나의 사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물을 중심하고 상하·전후·좌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러한 3수의 권(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존재의 기본형태입니다.

이렇게 셋이 만나서 하나의 통일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힘이 역순(逆順)으로 진행하면 본래와는 다른 힘의 작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래 사랑과 생명과 진리의 하나님이시지만, 타락한 이후 인간이 사랑과 생명과 진리가 균형잡힌 삼각형태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뜻을 이루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2-133, 1957.3.17)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일시에 점령하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군림하게 되면 자기들은 한 자리씩 해먹을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내 마음 가운데 천국의 기반을 닦아야 되고, 그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인 것입니다. 천국은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거점은 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47-273, 1971.8.29)

천국의 거점이 어디에 있느냐? 기독교인 가운데는 `예수 믿고 천국 가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거점이 어디에 있느냐? 천국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네 마음에 있다.`고 했는데, 그 천국의 거점이 어디일 것이냐? 슬퍼하는 마음이 천국의 거점이 되겠느냐, 자기를 내세우려는 마음이 천국의 거점이 되겠느냐, 사회를 부정하는 마음이 천국의 거점이 되겠느냐?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내용의 거점이 아니요, 하나님이 찬동할 수 있는 천국의 거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거점을 찾는 사람은 이 땅 위의 그 누구보다도 고독한 자리에 부딪쳐야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나님이 고독하기 때문에 사람도 고독해야 되고, 하나님이 극복의 역사를 거쳐왔기 때문에 그 사람도 극복의 역사노정을 거쳐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땅에 슬픔이 가득하다고 해서 인간이 그 슬픔을 느끼면서 회개하고 통곡의 눈물만을 흘린다면 그 자리가 천국의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냐? 그것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때를 바라면서 교단을 섬기는 반면, 이 세상의 죄악을 해결해야 되겠다는 마음의 결의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을 다짐하는 하나의 방향이 없고는 하늘의 거점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는 양심적이고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천국은 자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선과 악이 같이 출발한다는 인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과 악은 동시에 출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악이 동쪽으로 가면 선은 서쪽으로 가야 되고, 악이 움직이면 선은 정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악이 욕망을 가지면 선은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반대입니다.

하늘나라를 찾기 위한 출발은 인간세상에 대한 소망을 다 잃어버린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생활에서 만족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참된 종교인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생사가 엇갈리는 운명에 부딪쳐 자기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절망에 빠질 때 습관적인 생활에 젖어 있을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까지도 부정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가는 데서부터 참된 선이 출발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내 인격이 하늘의 거점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없는 것입니다. 또 `내가 지금 거느리고 있는 가정이 하늘의 거점이다.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 가정을 모른다고 할 수 없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가정도 역시 없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종족은 이러이러한 선의 공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종족을 모른 척할 수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종족이 이 세계에 어디 있으며, 그러한 민족이 어디 있느냐, 국가가 어디 있느냐, 주의?사상이 어디 있느냐 할 때,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악의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천 년 이상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천 년 살겠다는 꿈을 꿀 수 있는 것이요, 자기 자신을 만 년 이상 희생하더라도 그것을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만 만 년을 살 수 있는 소망을 찾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 영원한 천국을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영원을 목표하고 현시점을 극복해야 되며, 현시점에서 자기를 희생하면서 참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야만 영원한 거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47-247, 197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