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경외의식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예절과 의식

2)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경외의식

① 예배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목적은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찾고 인류를 구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독교가 안식일을 지켜 온 것은, 이날을 거룩히 지킴으로써 나 자신이 승화돼가지고 나 자신을 생각하는, 즉 구원의 목적을 가중시키는 데 주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목적은 나의 구원의 길을 촉진시키는 것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서 전체를 구원하고, 앞으로 하나님 섭리의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목적을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 책임 높은 하나님의 소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69-240, 1973.12.30)

예배 드리는 시간은 제사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자기 과거를 하나님께 속죄해야 합니다. 고로 예배시간은 자유가 없는 시간입니다.(11-163, 1961.6.24)

예배시간은 밀려오는 사탄의 어떠한 권한도 막아내고 아버지 앞에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하는 시간입니다. (6-263, 1959.6.7)

예배 드리는 그 시간은 원수와 일격전을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자리입니다. (9-296, 1960.6.12)

예배시간에 일찍 온 만큼의 시간은 하나님을 위해 바친 시간이기 때문에 천금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예배시간만큼은 하나님께 바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늦게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을 도둑질하는 것이 됩니다. 예배는 제시간에 나와서 드려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만큼 하나님 앞에 면목도 세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어제보다 나은 마음을 가지고 하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지만, 늦게 오면 기도할 때 눈을 꿈벅꿈벅거리면서 선생님이 무슨 말씀 하실까 하고 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36-125, 1970.11.22)

하나님을 찾아 나가 모시는 자리에 예복을 안 입고 참석할 수 있습니까? 겉모양의 예복이 아닙니다. 심정의 예복입니다. 이렇게 모인 여러분들의 그 마음에서 말씀과 더불어 찬송과 더불어 감격된 심정이 흘러 나온다면 하늘은 여러분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눈물 흘리며 쫓겨났지만, 여러분은 눈물을 흘리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웃는 얼굴로 하나님과 상봉해야 합니다. 슬픔의 눈물도 흘려 보지 못한 자가 기쁨의 눈물부터 흘리면 안 됩니다. (9-296, 1960.6.12)

예배시간을 위해 사흘 전부터 마음을 조여가면서 준비해야 됩니다. 만민의 행복을 빌어주고 만민이 소생할 수 있는 부활의 권한과 생명의 인연을 연결시키겠다고 몸부림치며 교회 문을 들어서야 하고, 하나님 앞에 목이 메이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래도 부족할 텐데 여러분은 오히려 장돌뱅이보다 더 뻔뻔스럽다는 것입니다. (20-284, 1968.7.7)

주일날 예배 때에는 목욕재계하고 하나님 앞에 경배 드리고, 성지에 찾아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찾아드는 사람이 없을망정 하나님이 그 부락을 굽어살피고 동역할 수 있는 심정적인 터전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혼자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그 자리는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하시니 절대로 외롭지가 않다는 겁니다. 3년 이상 여러분들이 정성을 들였는데도 그 동네에서 찾는 자가 없다면 그 동네는 망하는 것입니다. (17-293, 1967.2.15)

예배에 오더라도 그저 생각 없이 오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다하고, 하루 이틀 정성을 들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빛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이 클수록 하늘이 자기를 보호해 주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아내가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남편을 하루 종일 생각하다가 보이는 얼굴로, 입으로 웃게 될 때 영광의 빛이 난다는 겁니다. 그 웃는 얼굴은 남편을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228-85, 1992.3.15)

앞으로는 예배 드리는 것도 설교 형식이 아니라 보고 형식으로 해야 합니다. 보고의 내용은 그 가정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 전체가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한 가정을 보고는 본을 받고, 못한 가정을 보고는 잘되게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천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가정천국을 먼저 이루지 못하면 지상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23-63, 1969.5.11)

먼저 교회생활에 철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예배시간을 엄수해야 되겠습니다. 공식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시간에 모범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1-269, 1970.6.4)

하늘 앞에 나아가는데 약속은 절대적으로 엄수해야 됩니다.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무슨 은혜를 받겠어요? 그런 사람은 가다가 말아 버립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대로 지도하겠습니다. 싫으면 그만두세요. 누가 망하나 보잔 말입니다.

주일날 공적 집회 출석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 출석에 자녀들이 부러워서 따라오고 싶도록 부부가 정답게 같이 와야 합니다. 10시 이전에 교회에 와서 주일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회보 1-3)

예배시간은 사탄과 싸움하는 때입니다. 단독결판 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잠을 자서 되겠어요? 그런 자가 있으면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하셨듯이, `옆구리에 한방 때려넣어라.`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예배 때 자는 자가 있으면 그냥 두지 않습니다. (15-121, 1965.10.3)

정성들여야 할 사람들이 예배시간에 늦게 오면 되겠어요? 그런 사람은 부끄러워서 얼굴도 들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시간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남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시간도 안 지키면서 `오, 하늘이시여!` 할 수 있어요? 정성은 남이 알게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와서 정성을 들이려면 차를 타고 올 것이 아니라 걸어와야 합니다. 여기 와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고 와서 더 간절한 기도를 해야 됩니다. 정성은 이렇게 들이는 것입니다. (42-235, 1971.3.14)

하늘은 간절히 사모하고 애쓰는 사람을 대해 주십니다. 아무나 막 찾아가서 대해 주시는 하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만은 절대로 엄수해야 합니다. 앞으로 시간을 어기면 앞에 세워 놓고 창피를 줄 겁니다. (11-134, 1961.3.26)

원래는 예배시간이 넘으면 문을 잠가 버려야 됩니다. 늦게 온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여러분들을 모아 놓고 어느 기준까지 끌어올리려니 두 시간 세 시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내가 하늘 앞에 기도하고 각오했던 심정적인 기준에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11-133, 1961.3.26)

하나님 앞에 나가는데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때를 못 맞추면 망하는 겁니다. 때를 못 찾으면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성별된 환경을 요구하고 성별된 마음을 요구하는데, 시간도 못 지켜가지고 뒤꽁무니에서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하늘은 그런 찬송 원치 않으십니다. (11-132, 1961.3.26)

공식적인 예배시간은 잘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발전합니다. (31-269, 197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