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예절과 의식

③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어, 내가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아벨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가인이니, 나를 섬겨라!` 하는 이런 미치광이들이 있습니다. 아벨은 어떠한 것이 아벨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보다 공적인 사람이 아벨입니다.

가인은 무엇이냐? 사탄편입니다. 사탄은 자기를 생각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아벨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먼저 들어왔더라도 자기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자기 생각이 앞서는 사람은 가인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원칙에서 사람을 대합니다. 아무리 오래된 식구라도 그 심통이 자기를 위하게 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할 수 없이 내가 그냥 두지만 때가 되면 보따리를 싸게 해서 쫓아낼 겁니다.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아벨이 아닙니다. 사적인 기준이 앞서는 것은 가인이요, 자기보다 공적인 문제, 하늘을 더 생각하는 것이 아벨입니다. (58-68, 1972.6.6)

여기 통일교인들 끼리끼리 형제를 결정하는데 먼저 들어온 사람은 아벨의 입장인 동시에 가인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가인의 입장인 동시에 아벨입니다. (24-348, 1969.9.14)

원리적인 입장에서 아벨은 중심입니다. 이 중심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들어가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벨이 되었습니까?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다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다 하지 못하면 아벨이 되지 못합니다. 아흔아홉 가지를 다 했더라도 한 가지를 못하면 아벨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34-46, 1970.8.29)

통일교인 가운데 어떤 사람이 가인이냐? 머리를 치켜들고 남을 시켜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인입니다. 그러면 아벨은 누구냐? 책임 다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벨입니다.

본래는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가인인데도, 먼저 들어온 녀석들이 아벨 노릇을 하려고 꺼떡거립니다. 그것은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별의별 놀음을 다 해도 원리원칙대로 안 하면 선생님이 안 써주는 것입니다. (49-215, 1971.10.10)

아벨은 어떠한 존재이고 가인은 어떠한 존재냐? 원리로 보아 단적으로 말한다면, 가인은 자기에게 걱정이 있으면 그 걱정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사람이요, 아벨은 자기 걱정도 있지만 남의 걱정까지 도맡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 차입니다. (62-189, 1972.9.25)

어떠한 사람이 아벨이고 가인이냐 하면, 침해(侵害)를 받는 사람이 아벨이고 가해(加害)를 하는 사람이 가인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 앞에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은 나이가 많고, 작은아들은 나이가 적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부모의 의논 상대라든가 모든 면에 있어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은 맏아들뿐이라 하더라도, 이 맏아들이 작은아들이 아무 실수도 하지 않고 잘못도 없는데도 작은아들에게 손을 대면 부모는 큰아들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작은아들편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회에서 적용되는 선악의 비판 기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를 입히는 사람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남달리 유난하게 저게 뭐야`? 하며 흉을 보면 벌써 그는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가인 아벨은 그렇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리에서 비판받는 사람,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벨이 되는 것이요, 비판하는 사람, 가해를 하는 사람은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말을 하더라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벨이 되는 것이요, 해를 끼치는 말을 하는 사람은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이익을 끼친다는 것은 이익을 주는 것이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은 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이익 되게 하는 자리는 공적인 자리요, 자기 이익을 위한 자리는 사적인 자리입니다. 이렇듯 공(公)과 사(私)를 중심삼고 아벨과 가인, 선과 악은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56-86, 1972.5.14)

보다 공적인 존재가 아벨입니다. 통일교회 교인 중에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먼저 들어왔어도 공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면 가인입니다. 틀림없이 가인입니다. 가인도 자기가 먼저 태어나긴 했지만 아벨보다 공적인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아벨을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통일교인 가운데에도 먼저 들어왔다고 떡 버티고 앉아서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들어온 사람보다 공적인 자리에 서지 못하면 가인입니다. 아벨적인 존재는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선 사람입니다. (31-165, 1970.5.24)

선생님이 한 생애를 다 바쳐 자기의 이익보다 공적인 이익을 위해 희생했고, 그런 재료면 재료, 양(量)이면 양을 많이 투입한 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연히 추앙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원리이고 천운입니다. (64-81, 1972.10.24)

아벨의 완성은 개인적 아벨의 완성, 가정적 아벨의 완성, 종족적 혹은 민족·국가·세계적 아벨의 완성의 터전을 이어나가지 않고는 세계천국 복귀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것을 아는 우리들은 밤이나 낮이나 찾아오는 그날그날들을 이 원칙을 적용시키고, 이 원칙의 발전을 연결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왈(曰) 하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64-81, 197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