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중생을 하려면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축복가정

나. 중생을 하려면

신랑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신부 되시는 성신의 사랑이 일체가 된 그 사랑이 나의 뼈와 살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즉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사랑의 심정 기반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중생(重生)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14-28, 1981.5.14)

여러분들은 중생(重生) 받아야 된다고 말하지만, 중생 받으려면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됩니다. 타락권 내에서, 즉 사탄의 사랑권 내에서 이루어지는 그 어떤 사랑보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사랑이 더 차원 높지 않는 한,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수난의 길이요, 종교인들이 가야 하는 어려운 길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날마다 사모하고 있고, 예수님이 재림하시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고, 간장이 녹아나도록 `신랑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2천 년 동안 부르짖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몸이 터져 나가고 가슴이 찢어지고, 뼛골이 녹아나는 자리,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모르는 경지, 오직 하나님이나 예수님과만 통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될 때 비로소 성신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신이 임함으로써 영적인 아기로서 재생할 수 있는 영적 중생(靈的重生)의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체험 있습니까? 그런 체험이 없는 한 아직 사탄세계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천당에 못 갑니다. 지옥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114-28, 1981.5.14)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 대해서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어차피 역사적으로 부정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잘 했다고 변명하고 스스로 세워 놓은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나 자체는 부정되어야 합니다. 타락의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권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정되어야 할 생애요, 부정되어야 할 생활이요, 부정되어야 할 죽은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6-278, 1959.6.7)

혈통을 전환하는 것은 메시아가 할는지 모르나, 전환하도록 행동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러한 기준이 이룩되지 않는 한 우리는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죽느냐 사느냐의 경지를 통과해야 합니다. 40일 단식기도라든가 피를 토하는 죽음의 경지에 가야 혈통전환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62)

세계의 만민들은 참어머니가 나타나기 전에 태어났으니 헛되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접붙인 입장에서 예수님의 뱃속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이 부부를 이루었을 때 성신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거짓된 사랑으로 태어났으니 참된 사랑을 통하여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17-192, 1966.12.18)

예수님과 일체를 이루는 데는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진리도 정의도 아닙니다. 생명이 있기에 앞서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역사도 뛰어넘을 수 있으며, 거리나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세계-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