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바다낚시는 정신적인 것 - [8대교재교본] 천성경 환태평양섭리

라. 바다낚시는 정신적인 것

선생님은 낚시 가서나 어디서나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낚시를 오래 한 사람은 낚싯대를 열 번 늘어뜨리면 열 번 생각하고, 백 번 늘어뜨리면 백 번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열 번 늘어뜨리면서 백 번 생각을 하게 된다면 앞설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쓱 가게 되면, 낚시터가 모래가 있는 곳인지 벌써 다녀보면 압니다. 전문가들은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추(鉛錘)를 달아 끌어 보면 모래판은 툭툭툭 하고, 감탕밭은 주욱 끌려오는 것입니다. (221-85, 1991.10.23)

대개 보면 낚싯대를 하나만 놓고 낚시를 하지 않습니다.

낚시하는 사람은 두 대를 맞춰 놓습니다. 왜 두 개냐 하면 남자 완성 여자 완성, 즉 주체·대상 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228-260, 1992.7.5)

사냥은 육체운동으로서 육체건강을 위한 것이고, 낚시는 정신건강을 위한 것입니다. 앉아서 낚시질할 때는 자기 일생을 회상하고, 생각을 참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분석하고 미래 생활에 대해 설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위엄을 갖추고 자기 자신을 차분히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낚시도(道)라고 합니다.

새끼 고기들이 어미 고기가 잡혀 올라올 때 따라 올라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자기 생활을 중심삼고 `아, 잡아서 안 되겠구나!` 생각합니다. 자기 아들딸을 중심삼고 생각하고 자기 민족을 놓고 생각하게 됩니다. 낚시를 몇 년만 하게 되면 잡았더라도 놓아주고 싶지, 잡은 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그것이 진짜 도(道)입니다.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252-208, 1993.12.30)

사람들이 배타고 낚시 나가게 되면 기후 좋고 기분 좋을 때 가려고 합니다. 그건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소낙비가 오고 벼락을 치는 환경에서 낚시질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가 올 때 환경적 변화, 주변의 모든 물이 어떻게 다르고, 그 물이 움직이므로 고기에 어떤 영향을 준다는 사실들은 억수같이 비오는 자리에서 낚시를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입니다. (276-71, 1996.2.4)

역사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을 가리켜 틀렸다고 말을 못합니다. 내가 부끄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기의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앉아 낚시를 하면서 `너희들은 나 같은 남자를 처음 보지? 너희들을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너희들을 연결시켜서 어장을 중심삼고 인류 기근을 해방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너희들이 창조된 본연의 목적이 아니냐? 그렇게 된다면 너희들의 살을 먹은 자는 나쁜 짓을 안 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247-33, 1993.4.21)

선생님이 낚시를 할 때 `내가 주인이다. 다 오너라!` 하면, 고기들이 전부 몰려옵니다. 그러면 먹이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낚시를 하면 언제나 주위 사람들보다 더 많이 잡습니다.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종적인 하나님을 중심삼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색다른 광채가 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서 보통의 빛이 난다면, 선생님은 특별한 빛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빛을 고기들이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오지 말라고 해도 몰려오는 것입니다. (248-36, 1993.5.30)

선생님이 낚시를 가서 첫 번 잡은 고기는 놔줍니다. 하나님이 지어가지고 놔준다는 마음을 가지고 놔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잡은 고기는 지금까지 먹지를 않았습니다. 2천만의 하나님의 아들딸이 굶어죽는데 고기가 자연사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그겁니다. 너를 잡아가지고 2천만 하나님의 아들딸을 살려 주어야겠다 이겁니다.

동물이 혹은 생물들이 생겨난 원칙이 그것이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낚시대회에 나가게 되면 선생님 낚시에는 잘 잡히고, 일반 사람의 낚시에는 안 잡힙니다. 정성입니다, 정성. `야, 하나님이 지은 물 박물관에 잠수해 들어갈 수 없으니 한번 물 속에서 뛰쳐나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놔주는 기쁨을 감상하게 하라.` 그러면 자기가 잡혀 찾아오는 것입니다. (276-147, 1996.2.18)

배타고 푸른 바다에서 고기를 잡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 구원섭리와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고기라면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미끼를 좋은 것으로 꿰어 넣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든든한 줄을 매야 되고, 낚싯대도 좋아야 되고 모든 걸 갖추어가지고 잡아야지, 줄도 약하고 미끼도 나쁘고 낚싯대도 나쁘고 잡는 기술도 나쁘면 그것 못 잡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는 것도 딱 고기 잡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이 낚싯대와 같은 입장에서 낚시를 만들어가지고 좋은 줄을 걸고 좋은 미끼를 걸어서 낚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낚아지질 않습니다. 그것이 상대적인 여건이 맞아가지고 거기에 수확이 벌어지지, 상대적 여건을 맞추지 않으면 수확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277-17, 1996.3.17)

여러분은 선생님과 바다에 나가게 되면 선생님의 낚시에 고기가 잘 문다고 생각하지요? 낚시를 할 때는 다 상대같이 봅니다. 완전한 주체는 완전한 상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낚시를 할 때는 `여기에는 반드시 고기가 물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내가 이렇게 한 번 딱 대면 이것이 벌써 상대적 가치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만지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262-301, 1984.8.1)

하루 종일 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소변도 거기서 해결합니다. 깡통을 갖다 놓고 `야, 소변을 본다. 돌아보지 말아라!` 하고 궁둥이를 반대로 해서 싸는 것입니다. 혼자 거기서 오줌 싸고 먹고 종일 그러는 것입니다. 25년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캔을 사용하면 아주 편리합니다.

바다에서 벌거벗고 수영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하는데 그렇다고 누가 흉볼 것이 있어요? 동물들은 보고 웃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몇 사람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새나 동물, 모든 만물도 다 똑같은 상태인데 누가 욕을 해요? 그건 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끄러워할 것 없습니다. 여자도 그때 가서는 앉아서 소변 안 보고 남자와 같이 서서 봐도 된다는 것입니다. (303-120, 1999.8.8)

알래스카에서 고기를 잡을 때 해안 경비대들이 우리가 새벽같이 나가는 것을 보고 고기잡이를 무슨 훈련같이 한다고 찾아와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 하고 탄복을 하면서 칭찬하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다에 가도 내가 낚시질을 제일 잘하지요? 송사리떼부터 못 잡아 본 고기가 없습니다. 지금 고래 잡으라고 하면 하루에 몇 마리는 잡을 것입니다. 튜나로부터 못 잡아 본 고기가 어디 있습니까? 동해안·서해안, 태평양·대서양·지중해 할 것 없이 다니면서 안 잡아 본 고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물정이 훤합니다. (211-62, 1990.12.28)

큰 소나무를 보거든 `내가 환난받던 지난 역사시대의 나를 알고, 떠나던 것을 봤던 너는 오늘날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문의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지난날 내 친구를 저주하던 그 뜰을 이제는 사랑의 친구로 품고, 흘러가는 물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젠 주인의 자리에서 다 잊고 그 물가에서 헤엄도 쳐주고, 거기에 사는 고기도 낚아 주겠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인입니다. 비로소 에덴동산의 아담이 강에 들어가 처음으로 왕권의 대표자로서 고기를 낚아 먹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낚시질도 해서 고기를 잡아먹어도 되고, 산에 있는 토끼나 꿩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잡아서 부모를 봉양하고, 하나님 앞에 제물삼고, 생활을 위한 음식으로서, 생활의 재료로서 소모한다고 할 수 있는 역사를 남겨야 합니다. (221-20, 1991.10.20)

선생님은 지금까지 가장 비참한 세계로부터 모든 것을 다 타고 넘어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못하는 것도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농촌에 가면 농부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땅에는 뭘 심어야 하는지 훤히 알고 있습니다. 또, 바다에 가면 낚시에는 왕입니다.

튜나(tuna:다랑어)를 잡는 데 있어서도 `레버런 문 시스템`이라고 해서 벌써 유명해졌습니다. 또한 만민이 만세를 할 때는 사진 찍어주는 카메라맨도 되고, 밥을 짓는 취사장에 들어가면 요리를 하는 주방장도 됩니다. 주인은 그렇지요? 모든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배후를 엮어 온 사람이 참부모라고 하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229-68, 1992.4.9)

참사랑을 가졌으면 무엇이든지 통일이 가능합니다. 동물세계, 식물세계, 독사까지도 전부 보호해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낚시질할 때는 `고기들아! 내가 너를 잡는 것은 나를 위해 잡는 것이 아니야. 세계에서 굶어죽는 저 불쌍한 사람,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먹이고 싶어하는 그런 심정을 대신해서 잡는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후손과 만민을 위해 잡는 것이니 너희들 용서해야 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잡는 것은 먹지 않고 놓아주는 것입니다. 제물로 놓아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았으면 그 앞에 생명을 바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배에 12명이 타게 되면 3분의 1은 내가 잡습니다. 그러니까 주위에서 고기들이 알아보고 `선생님의 낚시에만 자꾸 물어!` 합니다. (278-105, 1996.5.1)

세계 사람들이 선생님을 신비스러운 사나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니까 신비스러운 말도 잘하는 것입니다. 또, 신비스런 행동도 잘합니다. 내가 통일교회 교주지만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어부 중의 왕어부입니다. `저 사람이 통일교회 교주인데 뭘 알까?` 하지만 현장에 가서 감독하면 10년, 20년 하던 사람들도 감탄합니다. 농장에 가면 농장의 일도 잘합니다. 학자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신비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을 만나면 더 신비스러운 사람이 레버런 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신비스럽게 만든다구요? 참사랑이 그렇게 만듭니다. (205-140, 1990.8.12)

선생님은 철저한 3식주의자입니다.

후식 같은 것은 안 먹습니다. 디저트 같은 것은 테이블 위에 있어도 안 먹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옷도 이런 것입니다. 넥타이 같은 것은 안 맵니다. 사람들이 넥타이를 매는 돈을 모두 모아서 세계를 구하는 데 쓰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화장실에 가도 휴지를 두 장 이상 안 씁니다. 가능하면 한 장입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낭비하는 것은 죄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일정량의 소모품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 쓰면 죄입니다. 우리는 남기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후손이 그것을 빚으로 상속받습니다. 누가 말을 해서 교육해 줘요? 교육 이전에 원리가 선생입니다. 자연이 선생이고, 바다가 선생입니다. (193-104, 1989.8.31)

산에 가면 산나물 같은 것도 훤히 압니다. 이건 무엇이고, 무엇을 해먹고 무엇이 나쁘고, 독버섯 같은 것도 훤히 다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에 가서 살 수 있는 법도 다 알고, 바다에 가면 낚시를 어떻게 한다는 걸 다 압니다. 물에 고기만 있다면 틀림없이 혼자서라도 거기에 집 짓고 살 수 있습니다. 고기는 잡아서 소금만 가지고 산 채로 먹는 것이 맛있습니다. 정말입니다. 혼자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준비를 다 했습니다. (233-261, 1992.8.1)

여러분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선생님이 혼자서 미국에서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배후의 고생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매일 바다에 나가는 것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선생님은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학자세계로부터 문화세계, 예술세계, 교육세계 등 손을 안 댄 데가 없습니다. 사상세계까지도 손을 댔습니다.

그 기준에서 여러분도 여기서 교육받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다갔다해요? 선생님을 40년 가까이 따라 나온 사람도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매번 새롭습니다. 제멋대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확실히 알았을 경우에도 세계를 복귀하기까지는 군소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193-105, 1989.8.31)

나도 혼자는 싫습니다. 혼자 있기 싫다는 것입니다. 바닷가에서 일하면 낚시질하는 사람, 일등 어부와 같이 있고 싶고, 산에 가면 산행하는 사람과 있고 싶고, 씨름판에 가면 씨름하는 사람과 있고 싶고, 술판에 나가면 냄새를 맡더라도, 냄새 맡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혼자서는 안 됩니다. 친구가 필요합니다. 동료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싫다 그 말입니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무리 문 선생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혼자는 심심해서 못 삽니다. (147-312, 1986.10.1)

결혼하는 것은 주인을 찾는 것입니다. 둘이 딱 붙으면 사랑은 어디서 왔느냐 하면, 저 수직의 하늘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요게 달라붙으면 수직이 쭉 내려옵니다. 머리에 갔던 피가 저 아래로 가요, 안 가요? 발 끄트머리로 갑니다. `농민 냄새 나는 발끝, 손끝을 거쳐오던 피는 내버려야 되겠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다. 그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높았던 것은 낮은 데로 가야 되고, 낮은 데 있던 것은 높은 데로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 선생도 이제 성공 다 하고, 뜻을 다 이룬 다음에는 저 낮은 데, 초야에 가 묻혀 살면서 낚시나 하고 농민의 친구가 되고 어부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 그런 훈련 하고 있습니다. (221-342, 1991.10.27)

하나님도 사랑의 낚시로 끌고 다니더라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사랑의 예술이 생겨날 것입니다.

사랑의 희극·비극이, 사랑의 모든 문화가 창조될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창조하는 독립군이 되어 보고 싶지 않아요? (195-274, 1989.12.10)

최고의 미끼, 낚시의 미끼와 같은 것이 뭐냐? 사랑입니다. 만민을 낚을 수 있는 하나의 미끼가 뭐냐? 그게 사랑입니다. 역사를 낚고, 하나님을 낚을 수 있는 미끼는 뭐냐? 하나님을 낚을 수 있는 미끼가 있다면 한번 준비하고 싶지요? 그게 사랑의 미끼입니다. 역사를 낚을 수 있고 천지를 낚을 수 있는 미끼가 있다면 그게 뭐겠느냐? 그것이 사랑이다 이겁니다. (145-228, 1986.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