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과 예수님과의 관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5권 PDF전문보기

세례 요한과 예수님과의 관계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과거 4천년 동안 선조들이 잘못한 모든 조건을 담당하여 그 이상의 가치 기준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쪽으로 출발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탄권 세계로부터 새로운 희망의 하나님의 세계권으로 출발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입장에 있던 예수님이었다. 또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볼 때에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예수님은 지금까지 자기 한 사람을 희망으로 하고 4천년의 역사를 더듬어 오신 하나님에 대해서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지휘하고 이끌고 새로운 민족으로 재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백성으로서 혹은 자녀로서 키워진 민족이 하나님에게 거역한다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정의 고민과 함께 감람산 기슭을 혼자 걸으시면서 기도하셨던 것이다. 그런 시간을 많이 가졌다고 하는 것이 성서 가운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 내적 싸움을 해결하려고 요단강으로 세례 요한을 찾아갔던 예수님이었던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랑과 하나님으로부터의 희망과 하나님으로부터의 절대적 신앙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보호와 함께 승리와 영광의 생활을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하나님의 독생자였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누구였던가?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 즉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진 사자요, 예수님 앞에 산제물로서 역사적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기대권에 끌어넣을 수 있는 중심인물, 혹은 중심제물이었다. 그런 사명을 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진 인물이 세례 요한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백 퍼센트의 신앙의 기대에서, 백 퍼센트 희망의 기준에서 백 퍼센트 사랑의 기준을 가지고 세례 요한을 세워서 자신과 일치된 기준에서 하나님께 바쳐야 했던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역사적 실패를 탕감복귀하고 세례 요한을 하나의 제물로 하여 심정의 기대와 희망의 기대와 사랑의 기대의 실체로 바침으로써 지금까지 하나님의 내심(內心)에 걸려 있던 원한과 고민과 고통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예수님을 맞이할 기대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찾아간 목적이었다. 거기에 대해서 세례 요한에게는 신앙의 대표자로서의 실체, 희망의 대표자로서의 실체, 혹은 사랑의 대표자로서의 실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희망 또는 심정 혹은 신앙의 기준을 구해 받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것이 가지로 퍼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제1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상으로 본 입장이었다. 제1의 제자가 되지 않으면 거역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세례 요한은 역사를 거듭 파괴하는 중심이 되고 그 때문에 그때까지의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님과를 연결하는 사닥다리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예수님의 생애라고 하는 것은 진보하고 발전하는 생애가 아니라 쫓기고 후퇴하는 생활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상대로부터 환영받는 생애가 아니라 쫓기는 생애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사명을 다하지 못한 그날부터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예수님의 소원과는 거꾸로 민족 전체가 반대하고 반역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교 전체가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중심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그때까지의 역사관이 모세를 중심으로 한 기준에 머무르고 말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준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 2천년의 비참한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을 맞이하지 않는 것에 대한 후회의 역사였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제2차대전 때에 나치스에 의한 이스라엘 민족이 몇백만 명이나 죽어 갔다. 그렇게 안 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때가 거듭 올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새로운 희망을 가질 자격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가는 곳곳마다에서 쫓기는 민족으로서 비참한 역사를 남기고 왔다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예수를 십자가에 내 준 죄의 댓가인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크리스찬들은 모른다. ‘혹 그것이 인정되지 않거든 기도해 보라.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주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