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바른 도리는 부활의 도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5권 PDF전문보기

기독교의 바른 도리는 부활의 도리

나는 사랑이 그리운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그리운 것은 아니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여러분의 얼굴보다도 여러분이 가는 길이다. 여러분이 가는 길이 그리운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워하셨던 것은 예수님 자체보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었다. 개인이 가는 길, 가정이 가는 길, 씨족이 가는 길, 민족이 가는 길, 세계가 가는 길을 예수님이 가셨다고 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예수님이 만약 가정기준에서 세계적 승리자가 되었다면 어떠하였을까? 예수님이 혹시 결혼하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아들을 하나님의 자손으로서 인정하였을까? 인정하지 아니 하였을까? 인정했겠지요. 그렇게 되었다면 예수님이 돌아가셨어도 제2의 예수가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자손이 민족이 되고 또 그들을 중심으로 인류 전부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인과 아벨이 탕감조건을 세웠더라면 세계는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유대 민족이 그러한 이상을 알고서 예수님의 심정과 의향을 이해하고 예수님 앞에 가서‘하나님이 바라시는 데 당신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한 소녀가 혹시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선생님은 그러한 것을 생각한다. 어떻게 되었을까?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 중심의 세계권을 만들려고 했다면 만들어졌을 것이다. 아담 해와의 기준이 창조본연의 기준이니까 절대적으로 합치하여 하나님과 삼위일체가 되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기독교회에 가서 가르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어쫓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거기까지 심각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해야만 된다.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는 깨달을 수가 없다. 깨닫지 않고 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러한 책임을 지고 십자가의 길도 당당히 가는 기세를 가지고 사탄을 극복하여 세계를 재출발시키는 복음의 주인이 되었다.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여러분이 그러한 목적을 거듭 세우고 상속받아 먼저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씨족에, 여러분의 민족에, 여러분의 국가에 넓혀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이고 일본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선민을 필요로 하신다. 그것은 씨족부터 민족, 국가에로. 그러니까 제2이스라엘 선민권을 복귀하라. 복귀하는 데는 예수님의 본래의 희망을 중심삼고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 예수님이 오셔서 그 사명을 완수하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3대 제물을 역사적 탕감으로 세울 길이 막혀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사람 가운데 베드로는 신앙의 대표자, 야고보는 희망의 대표자, 요한은 사랑과 심정의 대표자인 것이다. 거기서 만약 요한이 죽는 다면 기독교의 역사가 끊겨 버린다. 살아 그것이 이어졌으니까 유대 민족이 역사적 심정의 기준과 예수님이 기도하신 기준을 지상에 남길 수가 있었다. 그 일은 다 모른다. 베드로는 신앙의 대표자, 야고보는 소망의 대표자, 요한은 사랑이 대표자인 것이다.

이 세 사람의 제자가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과 같은 소망, 예수님과 같은 신앙,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좌우의 십자가에는 강도가 달려 있었다. 그것이 인간 역사상 가장 비참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최초로 예수님과 같이 낙원에 간 사람은 바른편에 있던 강도였다. 서글픈 이야기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1제자의 사명을 해야 했는데, 자기의 위치를 지키지 못했다. 그 시대에 있어서의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에 3대 제물로 서야 할 세 제자가 자기들 마음대로 가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어서 다시 그들을 인도하고 40일 부활기간을 통하여 승리권(勝利圈)을 만들었다. 기독교는 십자가를 통한 것이 아니고 부활을 통한 것이다. 십자가는 슬픔의 조건이다. 만약 부활이 없었더라면 기독교의 시작은 있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세계를 일주할 때에 많은 십자가를 보면서 내 사명은 그 모든 십자가를 없애 버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자식들을 통하여서라도 없애 버릴 것이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고 부활의 도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제물을 바치지 않고 미래의 소망의 조건으로서 겟세마네를 넘고 갈보리를 넘어가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