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감의 길에는 지름길과 고른 길이 없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8권 PDF전문보기

탕감의 길에는 지름길과 고른 길이 없다

예수는 원래 죽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서 영과 육을 합하여 하나의 가정, 사회,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과 세계를 대표하여 탕감해 나갔어야 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인데 몰림받아 죽음으로써 영적 구원의 터전만을 마련해야 했으니 예수님의 사정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했겠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오시는 데에는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선민권을 찾아서 오실 터인즉, 기독교중의 기독교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독교 전체가 오시는 메시아를 환영하여 사탄편에 있는 공산주의를 무난히 돌파해서 그들을 사랑으로 자연굴복시켜야 합니다. 이런 단계를 어떻게 넘어가야 할 것인가를 하는 것이 현대가 안고 있는 고민이요, 오시는 주님이 넘어야 할 최대의 고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신자들은 그런 것을 꿈도 안 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로 오시는 메시아를 몰아내어 다시 잡아 죽이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복이 있어서 그런지 화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세계의 수많은 종교들과 기독교로부터 시련과 핍박을 받고 있고, 환난 고통을 당하며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와 하나 되고, 대한민국이 통일교회와 하나 되었더라면 한국의 현실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산당 문제는 벌써 선생님이 해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민족이 배반하는 자리에 섰고 기성교회가 배반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핍박하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갖은 모략을 다해서 통일교회를 핍박하고 선생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거기에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 나오시는 하늘 뜻 앞에 선생님이 그냥 놀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면 그들한테 걸려 들었겠지만, 천번 만번이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탕감노정을 걸어갔기에 그들에게 걸려 들지 않은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 해야 했던 일이 뭣이냐? 그것은 전통을 세우는 길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그들이 참소하는 조건에 걸리지 않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어떻게 해서 탕감의 고비를 넘어갈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선생님의 생활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의 생활 가운데에는 나그네와 같은 행로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둠을 재촉하는 석양 빛을 받으며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은 길도 많이 걸어왔습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사랑하는 처자를 남겨 두고 저는 가야 합니다. 안 갈 수 없습니다' 라고 기도하던 때를 선생님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하면 충성의 길이요, 잘못하면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기로에서, 하나님을 맞이할 때까지 나는 처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기도했습니다. 7년대환난의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하는 각오로 떠났습니다. 눈 앞이 캄캄해지고 어떤 장벽이 앞길을 가로막더라도, 민족을 찾아 나가는 길은 이 이상의 길이 없다는 각오로 나왔던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런 피맺힌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각오가 없으면 참의 세계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자기 처자, 자기 집안을 붙들고 눈물 흘리지 말고, 찾아야 할 미래의 크나큰 세계를 붙들고 눈물 흘려야 됩니다.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길을 가는 나그네 행로에는 지름길이 없고, 고른 길이 없습니다. 피 땀을 흘리며 찾아가야 할 곤고한 길인 것입니다. 나그네의 행로를 걷는 , 하늘길을 찾아 나가는 청년의 모습은 몰리고 쫓기는 한 마리의 양과 마찬가지입니다. 찾아가는 그 길에서 흘리는 눈물은 나의 눈물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흘리는 하나님의 눈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