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를 높여야 할 은혜받은 사람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2권 PDF전문보기

단계를 높여야 할 은혜받은 사람들

은혜받은 사람들이 은혜 가운데 생활을 하다가 그 은혜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놓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인연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혼자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혼자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반드시 어느 특정한 사람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갑이 있으면 을이 있어야 하고, 을이 있으면 병이 있어야 하고, 병이 있으면 정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있고, 남쪽이 있으면 북쪽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다른 생활처럼 신앙생활에도 반드시 신앙의 동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중심삼고 은혜의 역사를 할 때에는 한 사람만 세워서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동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 서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 남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 북쪽 분야의 역사를 하는 사람을 세워서 하시는 것입니다.

근세 한국에 있어서의 도의 세계에도 신령한 사람이 많이 왔다 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목사급, 장로급, 집사급, 평신도급 등 각급에서 신령한 사람들이 나타나 천태만상으로 은혜의 역사를 하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것이 어떠한 조직에서 어떠한 계통으로 형성되어 그와 같은 역사가 벌어졌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이면 동쪽의 한 분야를 중심으로 역사하는 한 사람을 중심삼고 그가 역사하는 것이 하늘 전체인 양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다가 온갖 정성을 다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가다가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전체라고 믿고 나오던 양심적 문제, 심정적 문제들이 완전히 중단되어 버리기 때문에 찾았던 은혜를 놓치는 서러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은혜 받은 사람을 한 사람만 통하지 말고 반드시 여러 사람들을 비교해 보아서 통해야 합니다. 높은 내용을 가진 영적 지도자를 만나서 스스로 그 단계를 높여 가는 지혜로운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신앙자들은 이런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나장로 패니, 박장로 패니, 이성봉 목사 패니, 혹은 무슨 패니 하는 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패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이 전체인 양, 최고인 양 생각하고 지탱해 나가고 있지만 그 내용을 분석, 종합해 보면 그 단계에서 더 높여 나가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종합적인 관측, 종합적인 비교, 종합적인 분석을 하여 나 자신이 제일 빠른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새로운 길을 갈 때는, 반드시 그냥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지금 갑이라는 사람한테 있다가 그 한계선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을이라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찾아가려는 그때에는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가가 속해 있던 종교권내에서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최고의 정성으로 `하늘이여 내가 가야 할 길이 여기에 끝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하며 결사적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기가 과거에 대하고 있던 영계, 그 기준 이상의 자리에 나 스스로 올라갈 수 있는 정성의 도수를 갖추게 되면 내가 머무를 곳이 거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의 것이란 어떤 것이냐? 만일 그 이상의 자리가 없을 때에는 그 이상의 자리를 나 자신이 개척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은혜의 생활이 끊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은혜를 받겠다고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이 파 놓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것이 아니라, 그 우물의 수맥을 따라가서 새로운 생수 줄기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지도하며 은혜를 주던 지도자의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생각될 때에는, 그 지도자가 한창 은혜받을 때 정성들이던 그 이상의 정성을 들여야만 그 길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자들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