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이 수난을 당한 이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0권 PDF전문보기

이스라엘 민족이 수난을 당한 이유

본시 육적인 이스라엘 나라, 육적인 이스라엘 땅,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땅이요, 하나님의 선민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세계의 나라와 사탄세계의 땅과 사탄세계의 백성을 점령하기 위한 제 1차적인 계획이 예수님이 불신당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깨져 나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발판은 땅위에 다 떨어져 없어진 것이요, 백성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던 것이며. 주권도 남아나지 않고 흘러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끄러뜨린 이스라엘 민족이었기 때문에 그 민족은 주권을 가질수 없는 것이요, 백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요, 땅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도처에서 유리고객하는 집시의 무리가 되었고, 서방 민족의 말발굽 아래 사라지고 총칼에 사라지는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피를 대가로 탕감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죽인 죄 때문입니다. 때가 점점 가까와 왔는데도 아직까지 예수를 죽인 죄를 다 탕감할 수 없기 때문에 2차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서방에 널려 있던 이스라엘 민족 6백만이 히틀러의 손에 학살당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이스라엘은 여기에서 모든 죄의 탕감조건을 세워 가지고 탕감을 치렀기 때문에 해방 이후 유엔의 협조에 의해 1948년 5월 하나의 독립국가를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이 재봉춘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죽어 없어져야 할 민족, 하늘의 벌을 받아 사라져야 할 민족이었지만, 그래도 주님이 다시 올 때가 됐기 때문에 땅 위에서 주님을 잃어버리고, 나라를 잃어버리고, 백성을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해결짓지 않고서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뜻을 못 이루기 때문에 그러한 독립의 운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예수를 죽인 죄로 이스라엘 민족 앞에 아랍권이 총칼을 쥐어 잡고 '이놈아, 예수를 죽인 반대의 입장에 서 봐라' 하는 입장에 몰려 있으니, 금후에 가야 할 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쥐어 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이 한민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민족 앞에 물의를 일으켰고, 스스로의 뜻을 품고 하늘의 도리를 따라가면서 하나님을 사랑 한다는 그런 무리들 앞에 염려의 대상이 되었을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염려의 대상은 안 될 것으로 봅니다. 그래도 통일교회가 있기 때문에 이제 한국의 고민거리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거예요.

예수가 십자가에 잘 죽었습니까?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영육 완성의 길을 못 가게 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몸이 땅에 걸려 십자가의 죽음 길을 감으로써 예수님의 몸을 위주한 땅의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적인 부활의 터전이라도 마련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거라구요.

예수님이 죽었던 그 터전에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생긴 것입니다. 기독교는 원래 부활의 종교이지, 십자가의 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형틀이라구요. 그런데 십자가가 인간을 구원해요? 예수님이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그 근본이 틀려서 나온 것입니다. 전부 다 부활의 도리를 믿어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여 40일 동안 영적인 이스라엘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흩어져 버린 사도들을 다시 수습해 가지고 70문도와 120문도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지상에 나라도 없고 땅의 기반도 잃어버린 채 뜬구름과 같이 영적인 천국을 소망하면서 발전해 나온 것이 제 2이스라엘인 민주세계권의 기독교입니다. 여기에는 아직 나라가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국가는 많지만 기독교 주권 국가는 없습니다. 교구장이 왕의 자리를 대표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 왕이 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주권자와 교법사와 제사장이 각기 달랐다는 것입니다. 명실공히 주권이 하늘 앞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권자 앞에 언제나 목이 잘리고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순교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비운 가운데에서 성장해 나온 것이 기독교가 아니었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