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의 하나님과의 관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0권 PDF전문보기

생활 속에서의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은 유대 나라를 통해서 로마를 향해 뜻을 이루기 위한 싸움의 과정에서 죽어갔습니다. 지금 세계는 하나의 무대가 되어 민주세계의 생활권내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좋다는 내용이 결정적으로 드러나게 되면 세계는 한품에 안길 수 있는 시대상이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세계를 품고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오색 인종을 초월하고 모든 국경과 사회 문화적인 배경을 초윌하여 새로운 문화세계 창건, 다시 말하면 현재 발전하고 있는 과정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최고의 문화, 결과적인 문화를 바라보면서 하늘땅이 화합할 수 있는 하나의 최고의 기준을 중심삼고 현재의 생활무대에서 그러한 이론적인 환경을 감미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먼 거리에 있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생활권내에서 직접 나와 동반하시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인정이자 천정이요 천정이자 인정으로, 종적 관계가 아니라 횡적인 관계에서 대등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갖고 살게 될 때, 비로소 여기에서 참된 인간이 결정되는 것이요, 참된 인간을 중심 삼고 가정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종적 관계는 격위로 볼 때 상하 관계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잘나기를 바랍니까, 못나기를 바랍니까? 대답해 보세요. 진짜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아들이 자기보다 잘난 것을 기분 나빠합니까, 자기 아들이 자기보다도 잘나기를 바랍니까? 「잘나기를 바랍니다」 잘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나이 많고 못생긴 아저씨가 아들을 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 아들이 그렇게 잘생기지도 않고 아버지와 비슷비슷한데 '그녀석 잘생겼구만, 아버지보다 백만 배 이상 잘생겼구만' 하고 말한다면 그 아버지는 괜히 좋아한다 이겁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아들보다 백만 분의 일만큼 못생겼다는 말이 아니예요? 그래도 그 아버지는 좋아 하거든요. 그 아들이 누구를 닮았겠어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의 아버지이고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인간 대해서 '하나님보다 잘생겼구만' 하면 하나님이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웃음) 나쁘다면 하나님은 인간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만 못해요. (웃음) 틀림없이 하나님도 좋아하실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잘나고 싶어요, 못나고 싶어요? 대답해 보세요. 「잘나고 싶어요」(웃음) 너무 그러면 실례가 되지요. 미안하지만 잘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옛날 동양에서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버지한테 문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내가 아버지 한번 되어 보고, 아버지가 나와 같이 한번 되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버지는 언제나 위에 있고 나는 언제나 아래에 있으란 말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상하관계가 좋긴 좋지만 언제나 그러면 싫다는 겁니다. 자기도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때가 있으면 괜찮지만 말이에요. 언제나 아버지는 윗 자리, 아들은 아랫 자리이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안 들어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예요.

부자의 관계는 격위에 있어서 상하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자리 나 한번 주소. 아버지 자리에 한번 가 보고 싶소' 할 때, '야 이놈아, 안 된다' 하면 거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그것까지 염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어떤 자리에 세워 놓을 것이냐 하는 것이 하나님편에서 볼 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어떤 자리에 세워 놓으려고 했느냐 하면 격위에 있어서는 상하관계이지만 사는 데 있어서는 전후 관계요, 내외관계에 세워 놓으려 하셨습니다. 이런 문제를 추구해 들어가야 하나님이 어디에 계셔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