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아담 해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2권 PDF전문보기

타락한 아담 해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

인간 조상 아담 해와는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있었지만, 타락한 후부터는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만물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인 그들과 관계를 맺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타락한 후에는 이 모든 피조만물들이 그들과 상관할래야 상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인하여 이렇게 비참한 자리에 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얼마만큼 비참한 자리에 떨어졌느냐 하면, 만유의 존재 전체를 허락받을 수 없는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모든 상대적 세계를 허락받을 수 없음과 동시에 자기 자신도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입장에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입장을 잃어버린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입장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주관해야 할 모든 피조 만물을 잃어버렸고, 자기 자체의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모든 인연까지 상실해 버린 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타락한 것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락했지만 타락한 그대로 버려질 수 없는 운명을 지니고 나온 것이 오늘날 우리 인생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이 큰 죄를 지어서 자식과의 인연을 끊는다고 선포할 수 있는 자리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그 부모는 자식에 대한 첫 정이나 첫 인연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부모의 심정도 이와 같은데. 세상 부모보다 높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 하더라도, 타락한 아담 해와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내심적인 동정의 마음을 아니 가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에게 허락하신 영광의 가치 기준이 지극히 높으면 높을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상반되는 서글픔과 비참함이 남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래야 돌아올 수 없는, 영영 저끄러진 아담 해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할 수만 있다면, 부모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하나의 길을 모색해서 용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싶은 마음을 안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입장에 계신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영영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입장에 떨어진 아담 해와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타락하기 이전에 사랑하고 싶을 때에 마음대로 사랑하고, 대하고 싶을 때에 마음대로 대하던, 자유스럽고 행복한 기준을 중심삼고 느낀 감정을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에 먼저 아담 해와를 대해서 느낀 행복의 기준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대해서 가질 수 있었던 행복의 마음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한 날, 한스러운 타락의 결과로 말미암아 빚어진 아담 해와를 바라볼 때, 이 타락의 결과를 취소시켜 버리고 전부 다 망각해 버릴 수 있는 입장에 섰으면 좋겠지만, 사랑의 귀결이라는 것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타락한 인간끼리도 서로 인연을 맺고 나오다가 멀리 떨어지게 되면 떨어지게 될수록, 혹은 이와 비슷한 환경이나 어떤 조건이 성립되면 될수록 서로서로가 그리워하고 생각을 아니 할래야 아니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우리 인간의 심정을 헤아려 볼 때도 그러하거늘, 사랑의 심정을 가지신 본연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해와를 대해 끊어버릴래야 끊어버릴 수 없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정이요, 하나님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무리 그런 심정을 가지고 아담 해와를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생각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슬픔을 돌려드리는 입장에 서서 하나님이 가시려는 길을 막는 여건으로 남아지게 되었을 때, 여기에 내심적으로 부딪쳐 오는 하나님의 심정적 한이 얼마나 컸겠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