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중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할 인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2권 PDF전문보기

가중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할 인간

십자가로 시작했으면 반드시 십자가로 계승되는 것입니다. 또한 은혜로 시작했으면 은혜로 계승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과거 개인적인 섭리시대에 있어서 십자가의 수난길을 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졌을 경우 그것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십자가의 수난길 이상의 자리에 나가지 않고는 먼저 쓰러진 그 사람의 사명을 이어나갈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사명이 그런 것처럼 가정적인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적 사명, 국가적 사명, 세계적 사명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개인탕감이 있으면 가정탐감이 있는 것이요, 가정탕감이 있으면 종족탕감이 있는 것이요, 종족탕감이 있으면 민족탕감이 있는 것이요, 민족탕감이 있으면 국가탕감이 있는 것이요, 국가탕감이 있으면 세계탕감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슬픈 복귀의 길입니다. 이것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발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가중된 십자가 노정에 있어서 새로운 결의를 할 수 있는 출발이 벌어지지 않고서는, 다시 말하면 옛날보다도 더 강하게, 더 자신을 갖고 뜻 앞에 더 의욕 적이요, 하나님 앞에 더 심정적인 자리에서 시대적인 내용을 책임질 수 있는 무리가 나오지 않고서는 이 십자가의 탕감노정을 발전시킬 수 없는 것이 정상적인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자기 스스로 해이해진 것을 인정하면서도 과거와 같은 신앙길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출발은 십자가로 뿌린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십자가로 거두어 개인적인 승리의 한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승리의 한날을 맞이했다고 해서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인 승리를 맞이하고 나서는 제 2차 십자가의 노정을 떠나야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가정적인 십자가의 노정을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승리는 가정적인 출발노정에 있어서 하나의 모체가 됩니다. 개인적인 십자가 노정에서 내게 힘으로 작용했던 것이 가정적 십자가 노정을 갖추어 나가는 데 있어서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찾아진 기쁨은 내 개인의 기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쁨이 내게 필요할 때까지 가중된 수난길에서 열매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그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분은 이러한 사실을 가슴 깊이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슴 깊이 보관된 그 자체 위에 기둥을 세워야 합니다. 그 터전 위에 자기 자신이 서지 앉으면 과거에 받았던 은사에 곁가지를 쳐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무시해 버리고 이 터전 위에 서지 않게 된다면 반드시 그 터전은 무너집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적 십자가의 노정을 출발했다 하더라도 다시 개인적인 십자가의 노정의 승리의 터전을 반복하여 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십자가 노정에서 얻어진 결실의 기쁨이 있으면 그 기쁨은 영원한 기쁨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공고화시킨 터전 위에 나 자신이 확고히 서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분야가 넓은 만큼 거기에 해당하는 십자가도 클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가정적 십자가에서 승리했다면 그 승리한 결과는 반드시 가정을 중심삼은 기쁨일 것입니다. 그것은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같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간 그 가정의 아들딸들은 반드시 천운을 타고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을 보고 가정적인 기쁨이 있다고 해서 가정적 기쁨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것으로 만족한다고 하는 안식의 자리, 해이한 자리에 머물게 되면 그것으로써 그 가정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종족적 십자가의 노정을 거쳐가야 할, 뜻이 요구하는 사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정적으로 허락된 하나님의 은사가 크다 해서 거기에 자리를 잡고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차원에서 아무리 승리를 했다 하더라도 가정적 승리로 끝나지 말고 종족적으로 더 고차적인 거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적인 은사의 터전에 그대로 머물게 되면 종족의 때를 연결시킬 수 없고 민족적인 때를 향해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갈 길을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방황하다가 후퇴해 버리게 되면 아무리 뜻이 발전한다 해로 뜻과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면 자기 스스로 해이해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더불어 생명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발전을 하지 못합니다.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라지 못하면 후퇴하고 마는 겁니다. 탕감복귀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어떠한 가중된 십자가의 노정을 범위를 넓혀 찾아오는 것입니다. 범위를 넓혀 찾아가는 데 있어서는 함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류적인 노정을 중심삼고 개인적인 탕감노정, 가정적인 탕감노정, 종족적인 탕감노정, 민족적인 탕감노정, 국가적인 탕감노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정에 있어서 환경의 범위는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것과 민족적인 것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적 섭리의 때와 민족적 섭리의 때의 차이는 방대한 것이지만 내용만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내용은 어디까지나 나와 가정 문제, 나와 사위기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범위와 그 위치는 차이가 있을 망정 그 내용만은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