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휼하는 신앙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3권 PDF전문보기

체휼하는 신앙

하나님께서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내가 당하는 시련이 너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내가 당해야 할 시련이 너 때문에 사라졌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비로소 그 자리에서 역사적인 슬픔을 망각할 수 있는 것이요, 개인을 대해서 현재의 슬픔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깊은 뜻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어느때에 그런 자리에 서 가지고 하나님을 염려해 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나에게 슬픔이 있게 되면 '아버지여, 내 슬픔을 막으시옵소서. 슬픔은 하나님 것으로 하시고 나에게는 기쁨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기도 방법입니다. 또는 '저희들에게 화를 없게 하시고 복을 주시옵소서. 화가 있다면 그 화를 당신이 가지시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복을 나에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런 신앙은 반드시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신앙길을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이 지금까지의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자기 스스로 어려운 길을 잘 극복해 나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자기가 극복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잘 참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스스로 걸어온 노정을 생각하며 기뻐하기 전에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셨는가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30억 인류를 바라보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열 자식이 있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 앞에 있어서 자식들은 전부 다 자기가 원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해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30억 인류는 전부 다 자기의 소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 소신대로 하나님이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천 사람이면 천 사람에게 다 좋게 해주어야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것을 다 해줄 수 있겠어요? 안 됩니다. 만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좋게 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좋게 해줘도 불평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노정에는 비애와 슬픔이 교차되어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좋은 때가 있으면 슬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선을 위해서 일생 동안 수난길을 간 사람이 그 일대에서는 기쁨을 못 봤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후대에서는 기쁨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단이 가는 길이 그렇습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 볼 때, 통일교회는 어떤 길을 갈 것이냐?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어떤 길을 갈 것이냐? 또 문선생을 지도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명령을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길은 기쁨을 구가하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슬픔을 느끼기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 자기가 느끼는 가슴 아픈 슬픔은 당사자 외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체휼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자는 것입니다.

왜 체휼적인 신앙을 강조하느냐? 하나님의 슬픔을 몰라 가지고는 하나님 앞으로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슬픔을 완전히 알고 그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슬픔을 제거시켜 줄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만 효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정이 부모와 같지 못하면 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충신 열녀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기반 위에 얼마나 있었느냐? 그런 적이 몇 번이 되느냐? 그러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도수와 그런 때가 얼마나 많았느냐에 따라 믿음은 결정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