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물을 받으려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3권 PDF전문보기

사랑의 선물을 받으려면

처녀가 시집을 가기 위해서 준비를 쫙 해 놓고 순정을 품고 어떤 신랑이 나타날꼬 하면서 오늘이야 내일이야 쓱 기다리고 있는데 이웃 동네의 잘난 미남자로부터 청혼이 들어왔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여자들, 기분이 좋을까? 여자들은 기분이 나쁠 거라, 왜? '누가 볼세라 건드릴세라 그저 꽁꽁 동여매고 뒤집어씌워 간직해 온 순정의 보따리를 누구한테 풀어 놓을꼬'라고 생각하면 그 도둑 같은 남자들을 믿을 수 있겠어요? 누가 장가오겠다고 해도 기분이 나쁠 거예요.

그래, 여러분, 기분이 나쁘겠어요? 장가오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될 때, 기분이 나쁠 것 같아요, 좋을 것 같아요? 시집가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처녀라면 모르지만, 시집가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처녀라면, 시집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아가씨라면 말이에요, 시집을 가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장가오겠다는 사람이 없다면 섭섭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집가고 싶은데 마침 장가를 오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는 여자가 아니라서 모르겠어요. 여자분들, 대답해 보세요.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좋겠습니다」 좋을 거라고요.

기분이 좋아 가지고 쓱 그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것입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척 일어나면 그 남자를 한번 만나 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앞서 돌아갈 것입니다. 내가 구상하는 남자는 이러이러한 사람인데, 고 남자의 구비 조건은 여기에 몇 퍼센트나 합격일까? 처음 만났을때 그 사람의 구비 조건이 내가 바라는 조건에 백 퍼센트 이상 딱 들어맞고도 남아 가지고 그 사람을 붙들고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사람 이상의 사람이기를 바라겠어요, 자기가 바라던 사람 이하의 사람이기를 바라겠어요? 욕심은 그 이상의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그러한 남자가 동시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할 때는 한 사람만 보고 싶겠어요, 아니면 세 사람 다 보고 싶겠어요? 「다 보고 싶겠습니다」 욕심들은 많구만. 그러면 한꺼번에 백 사람이 나타났다 할 때는 어떻겠어요? '그때에는 그저 눈을 감고 닥치는 대로 한 사람 택하지 뭐' 그래요? 백 사람이 한꺼번에 나타나서 자기에게 장가오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을 일일이 다 만나 봐야 되겠어요, 안 만나 봐도 되겠어요? 사흘에 한 사람씩 만난다 하더라도 1년이 걸리는구만.

그 백 사람을 전부 만나 보는데 1번 퇴짜놓고, 10번 퇴짜놓고, 30번 퇴짜놓고, 60번을 퇴짜놓았다고 할 때 그 나머지 사람들이 붙어 있겠어요? (웃음) 남아 있는 녀석은 미련한 녀석이라구. 60번까지 내려갔다면 그 다음 사람들은 다 도망갈 것입니다. 60번째인 사람도 도망가지.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저 여자는 어떻게 된 여자길래 이렇게 잘난 남자들을 다 후려 갈겨 버리고…. 어디로 시집가려고 그래. 에이 쌍 것'(웃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발을 잘해야 됩니다. 출발을 잘해야 된다구요. 잘못했다가는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순정도 출발을 잘못했다가는 망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럼 시집을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될 것이냐? 시집을 어떻게 갈 것이냐? 희생적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생각해 보라구요. 얼굴이 못생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노력을 해야 되기 때문에 희생적 사랑이 필요합니다. 희생적인 사랑이 행복이라면, 2배의 희생을 해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1배의 희생을 해 가지고 사랑하는 것보다 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좋은 아들딸을 주는 데 있어서, 1배의 노력을 해서 잘사는 부부가 있고 얼굴이 못생긴 남편을 만나 가지고 2배의 노력을 하여 그들만큼 잘사는 부부가 있다 할 때, 하나님은 누구에게 좋은 아들딸을 주고자 하실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내가 하나님이라도 2배의 노력을 해 가지고 1배의 노력을 한 부부만큼 잘사는 부부에게 좋은 아들딸을 주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왜 그러냐? 사랑의 선물이란 보다 큰 희생의 터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희생이기 때문에 그런 터전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 후대에 남겨 줄 수 있는 복덩이 아들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어떻게 하느냐? 백 사람이 왔다면 그들을 상대로 선을 볼 것이 아니라 '남자라면 누구라도 아침이나 대낮이나 밤이라 언제든지 사랑할 자신이 있소. 나에게 장가오고 싶거든 여러분끼리 시합을 해서 최후에 남아진 남자가 오시오' 해야 됩니다. 여자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야, 그 여자 멋지다'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서로 '너, 그 여자에게 장가갈 거야? 장가가겠어? 정말 갈 거야?' 할 때, '가겠다'고 하면 '이놈, 정말이야? 나하고 생명을 걸고 싸울 거야? 나와라. 나는 벌써 생명을 걸 각오를 했다' 하면서 얼굴도 보지 않고 덤벼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백 사람 가운데 맨 나중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다 싸워 넘어뜨리고 다 쫓아 버리고 남은 두 사람이 싸워 가지고 맨 나중에는 어떤 사람이 남느냐 하면,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한 사람이 남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선을 안 보고 신랑을 얻어도, 선을 보지 않고 시집을 가더라도 시집을 잘 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애꾸눈이라는 것입니다, 애꾸눈이. 여러분은 애꾸눈이 신랑을 생각해 봤어요? 「아니요」 그렇게 되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일에 처녀가 약속하기를 싸워서 맨 나중까지 남아진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면, 남아진 사람이 애꾸눈이가 아니라 봉사라도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그 사람에게 시집을 안 가면 그 처녀는 생과부보다 더 한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집을 못 간다는 거에요. 백여 명의 남자들을 싸움을 붙여 놓고 싸움 구경을 좋아하는 간나라고 레테르가 붙게 되면 그 여자는 시집을 못가는 것입니다.

약속을 했으면 그 사람이 비록 봉사라 할지라도 시집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봉사 신랑을 맞아 보라구요. 비록 앞은 못 보지만 사랑만은 제일 셀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예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은 다리가 하나 없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영원히 남기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지요? 사랑은 영원히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참이란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행복이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한정이 없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