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사랑의 인연과 실천해야 할 사랑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4권 PDF전문보기

타고난 사랑의 인연과 실천해야 할 사랑

여기 갑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태어날 때에 본래의 참된 인연의 바탕에서 태어났으면 거기에는 참된 인연의 도수가 있을 것입니다. 10도 인연의 사랑 바탕에서 태어났느냐, 혹은 100도 인연의 사랑 바탕에서 태어났느냐? 만 명이면 만 명의 그 인연의 도수가 전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높고 낮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100만한 부자로 살라는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이 사람이 110만한 부자로 살다가 가게 되면, 태어날 때의 인연을 중심삼고 보아 장사 밑천 다 쓰고 빚지고 가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만 100만한 부자로 살도록 태어났는데 80만큼 쓰고 20만큼을 남겨 놓고 갔다고 할 때는 그는 땅 위에 무엇을 남기고 가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인연에도 한계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연이 전부 다 같지가 않아요. 사람이라는 면에는 다 같지만 태어나서 머무를 수 있는 기준이 전부 다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의 얼굴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둥그런 인연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길쭉한 인연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잘록한 인연을 갖고 있으니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얼굴 모양이 다른 것처럼 인연이 전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난 본성의 인연, 곧 자기가 어떤 인연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사랑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지만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얼마나 받는가에 대해서 모릅니다. 누구나 나면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아침 저녁 언제나 그 품에서 사랑받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인연에 따라서 많이 받는 사람도 있고 덜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자기가 본래 태어날 때의 인연줄을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를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하는 사랑의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기준이 백만큼 된다면 그 부모를 위해서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90만큼 사랑하는 것이 좋겠어요, 백 이상 사랑하는 것이 좋겠어요? 「백 이상요」 백 이상 사랑하게 되면 그것은 하늘을 위해서 저축하는 것이 됩니다. 또, 부부지간에 있어서도 그 인연된 사랑은 백만큼 된 사랑인데, 한 천만큼 사랑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몽땅 망해 없어지겠어요? 아내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백만큼 사랑하라고 했는데 만약에 백 이상을 사랑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빚지는 것이 되겠어요? 빚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쓰던가요, 달던가요? 여러분, 쓰던가요, 달던가요?(웃음) 여러분이 단 맛을 알려면 쓴 것을 먹어 봐야 진짜 단 맛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백만끔 사랑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천만큼의 사랑을 하려면 십 배 희생을 해야 됩니다. 하루에 한 번 섬기면 될 것을 열 배로 섬겨야 하니 편안하겠어요?

내가 우리 어머니께 들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애기를 많이 낳았습니다. 자그만치 열 고개를 넘고도 세 고개를 더 넘었으니 몇 사람 낳았어요?「열셋요」 열 세 명 낳았으니 예수의 일당파를 다 갖춘 셈입니다. 열두 제자와 예수까지 합하게 되면 열 세 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 세 명을 낳으셨는데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재미재미 해도 딴 재미는 없더라. 애기 낳아서 젖먹이고 키울 때의 그 이상 재미는 없더라. 늙어서 애기 못 낳으니 매사에 재미 없어 못 살겠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수고하여 꺼칠해진 얼굴입니다. 갖은 풍상을 다 겪은 어머니의 얼굴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스러운 아기를 키우던 수고의 길이 좋더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렵고 희생을 동반하는 것이지만, 그 희생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하게 되면 희생이 되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희생이 거름이 되고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살이 되고 뼈가 되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여보, 당신의 인연을 보게 되면 백만한 사랑의 인연을 갖고 있는데 나를 사랑할 때는 천만한 사랑을 하시오.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럴 때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달라고 해서 주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자 시작이다' 이것이 아니라 자연히 나도 모르게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오는지 가는지 소식도 없이 시작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명령에 의해서, 이제부터 시작한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에게 '당신은 나에게 백만한, 천만한 사랑을 해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로 사랑한다면 백만큼의 사랑을 타고 났어도 백만한 사랑을 다하지 말고 십만큼만 사랑해도 나는 족합니다' 하게 되면 백만큼의 사랑을 하고도 더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주고 싶지 않고 달라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주는 데에 있어서 설치고 나돌아다니는 녀석들에게는 주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점잖게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남몰래 살짝살짝 번식되는 것입니다. 부처끼리 사랑하는데 남이 보는 것이 좋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남몰래 자연스럽게 강제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십만큼의 사랑의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백, 천, 만만큼의 사랑을 했더라도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손해 나는 법이 없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