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신앙의 결실체로 나타나려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4권 PDF전문보기

역사적 신앙의 결실체로 나타나려면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선조들이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온 공적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선조들이 수고한 그 공적이 어느 한때에 결실을 봐야 될 것이 아니냐 하고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왔다 갔던 선조들이 한 일들이 하나의 결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한 비료가 되고 영양소가 되었을 뿐이지 그것이 결실 그 자체는 되지 못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그 결실은 기필코 어느한 시대에 나타나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결실로서 나타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일 것이냐?

예를 들어 나무는 그 나무가 겪어 온 수난의 모든 내용을 대표할 수 있는 결실을 맺어야 됩니다. 그 결실 자체가 그 수난의 내용보다 더 우위에 시지 않으면 그 결실은 중간에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있는, 그 내적 인연 이상의 힘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투입된 영양소에 의한 열매, 혹은 수난의 가치로서 찾고 있는 그 열매는 나타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섭리는 범위가 넓어져 나왔습니다.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범위가 넓어지고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섭리의 뜻의 내용은 점점 가중된 복잡성을 지니고 나왔 다. 이런 섭리의 뜻을 미루어볼 때, 현시대에 처해 있는 무리 중에 결실로서 자처하고 결실이 되기 위해서 나서는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 복잡함이 역사시대의 복잡함보다도 못해서는 완벽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못 될 것입니다.

복잡한 자리에서 더 복잡해야 되고 심각한 자리에서 더 심각해야 되겠습니다. 수난을 극복하는 자리에 있어서도, 어떠한 역사시대의 수난보다더 강한 수난길에서도 극복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건 왜냐? 과거에는 개인적 시대, 가정적 시대, 종족적 시대, 민족적 시대를 거쳐왔고, 지금은 세계시대와 천주시대를 향한 전환기인 것입니다. 그런 시점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시대는 어떠한 역사시대보다도 광대 하고, 그 골은 높고 그 심도에 있어서는 깊은 시대인데, 이 전체적 사연을 움직이고, 전체적 환경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내용에 있어서는 무엇 보다 심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복잡한 내용을 피해갈 것이 아니라 여기에 보다 복잡성을 가지고 이것을 초월하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자체로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시대 앞에 역사적인 신앙의 결실체로서 나타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심각한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은 6천년의 역사적 열매라고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통일교단을 통하여 아버지의 최후의 섭리는 끝을 맺어야 한다. 그 끝맺음의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이냐?' 하는 문제가 오늘 통일교단이 하나의 종교단체로서 선서해야 할 심각한 문제요, 통일교단의 일원으로서, 하나의 신앙인으로서 선서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대표한 개인, 그 자신은 심각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떠해야 되느냐? 통일교회도 심각해야 될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이 나라는 어떠해야 될 것이냐?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이 나라도 심각해야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이세계도 심각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심각한 자리에서 세계가 통일교회를 인도할 것이냐? 그런 섭리의 때가 되었으면 하나님은 걱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통일교회를 지도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끝난 자리 라는 것입니다. 통일된 세계가 통일교회를 인도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세계가 통일교회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가 세계를 인도해야 됩니다. 반대입니다. 이 나라가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통일교회를 인도해 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가 이 나라를 인도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종교를 이끌어 가고, 종교가 종교인을 이끌어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기를 바라는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일교 회가 통일교인을 끌고 가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통일교인이 통일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단이 6천년의 열매가 되기 전에 통일교인이 6천년의 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의 나라가 6천년의 열매가 되기 전에 통일교단이 열매가 되어야 되고, 통일교단이 열매가 되기 전에 통일교인이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통일나라가 열매 맺히기 전에 통일나라를 위한 통일교회 신도가그 나라의 열매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세계가 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나라가 열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나라가 세계를 대표한 열매로서 나타나기 전에 통일교단이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단이 열매가 되기 전에 통일교회 교인이 세계 적인 열매로서 나타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선 나, 그런 입장에 선 통일교회와 통일교인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