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들이 실패한 원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5권 PDF전문보기

믿음의 조상들이 실패한 원인

그러면 우리가 기쁘다고 할 수 있는 현실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적 실패의 자리에서 후퇴할 수 있는 현실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미래의 슬픈 고통이 우리 앞에 다가올 때에 그 고통을 피해 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복귀섭리노정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면, 우리 조상들이 지금까지 하늘 앞에 승리를 다짐해 나왔느냐, 혹은 실패의 요인을 자극시켜 가지고 하늘의 슬픔을 가중시켰느냐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늘 앞에 그렇게 충성하고 그렇게 수고하였던 노아 할아버지, 오직 뜻 대한 일념으로 슬픔을 잊고 자기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자리에 섰던 아브라함,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고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며 애국심을 발휘하는 행동파로서 선두를 달렸던 모세, 혹은 생애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귀중한 청춘시대까지 부정하고 광야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세례 요한 등등의 사람들을 회고해 보고, 그들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승리의 요인이 됐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패자로서 슬픔의 요인을 남겼을뿐 승리의 터전을 공고하게 다지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미루어 볼 때에, 그들은 수십 년 혹은 일생을 걸고 수난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타났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계승할 수 있는 심각한 순간을 계속해서 갖지 못한 현실무대에서 그런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실패의 요인이 깃들어 저끄러지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역사적인 시대를 계승받은 현실의 입장에서 누구 보다도 심각한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모세가 누구보다도 심각한 자리에서 민족을 위해서 정성들이던 마음, 미래에 이스라엘을 창건하여 소망하던 천국의 계승자가 되기를 바라던 모세의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미래의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는 자리에서 현실을 어떻게 미래와 연결시키냐 하는 문제를 붙들고 몸부림쳐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명령을 중심삼고 자기의 일체의 행복의 요건을 한꺼번에 도말해 버리는 행동을 단행했지만, 결국 실패의 요인을 남겨 역사적인 한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느냐? 제단에 제물을 드릴 때에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지극히 작은 실수 때문입니다. 시간으로 말하면 촌음에 지나지 않고, 행동으로 말해도 지극히 간단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촌음의 순간에 그렇게 큰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닌 간단한 행동이었지만 역사 전체를 뒤넘이치게 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게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미처 모르는 사이에 흥망성쇠의 요인은 현실이라는 운명길을 중심삼고 뒤넘이쳐 나간 것입니다. 그런 과거의 고통스러운 실패의 요인을 분석하여볼 때, 과거의 고통 이상으로 고통스런 자리도 당당코 나갈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고는 실패의 요인을 남겼던 역사를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은 가장 심각한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적으로 눈물을 흘렸던 자리, 상고시대에 조상들이 남긴 뜻을 알면 알수록, 그 전체를 대신하여 그 이상의 심각한 자리라도 찾아 가겠다고 다짐하는 자기 자신의 위치를 현재에서 어떻게 결정지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더욱이 미래에 있어서 행복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현재 이상의 수난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자기가 당하는 수난 이상의 수난을 기꺼이 맞을 수 있고 현재의 수난 길을 요리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지 않고는, 미래의 계승자가 될 수 없고 미래의 터전을 마련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가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현실이 과거의 조종을 받아 끌려가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전진할 수 있는 방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뒤로 돌아가서 과거의 조종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신앙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뜻을 처음 알았을 때 기뻐하던 그 마음이 오늘의 자신과 상관없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에 자기가 뜻을 알고는 이렇게 이렇게 움직였다며 옛날을 자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은 어떠냐고 하면, 오늘은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나 어느 한때는 다시 그럴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어느 한때라는 것이 오늘을 넘어서서는 오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에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무자비한 개척자의 생활을 한 과거가 있다 할진대, 그런 개척생활에 있어서 미래에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오늘은 그 이상으로 무자비한 개척생활을 하겠다는 결단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잃어 버린 사람은 미래를 계승받을 수 있는 주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미래에는 과거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