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심각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5권 PDF전문보기

항상 심각해야

개인을 복귀한 후에 가정을 복귀하는 것이 복귀섭리의 노정입니다. 개인 보다도 가정이 더 큰 터전이기에, 가정은 개인보다 크고 심각한 내용의 모체를 가지고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보다도 종족의 복귀는 더 심각합니다.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 거쳤던 수난보다 더 어려운 수난의 길을 거쳐야 합니다. 미래에 계승될 뜻을 맞는 데에는 더 어려운 내용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국가를 복귀하는 데에는 민족을 복귀할 때보다도, 세계를 복귀하는 데에는 국가를 복귀할 때보다 더 큰 수고를 해야 할 심각한 내용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된다면 과거가 공인되고 앞으로 미래가 환영해야 할 현재를 치게 될 때, 깨지는 현재의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를 들어서 현재를 치게 될 때에 깨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미래까지 들어서 치더라도 깨질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깨지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있어야 미래가 자신과 인연맺어지는 것이지, 만일에 깨진다고 하면 미래는 자신과 인연이 맺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건 틀림없습니다.

미래의 주인은 현실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주인은 미래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결정되어 가지고 미래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루 이틀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년, 혹은 일생을 거쳐 가지고 현실적 승리의 터전이 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승리의 역사로 남아지고 오늘의 승리가 과거의 승리보다도 빛날 수 있게 될 때에, 현재의 중심으로 추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추대를 받는 게 현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다짐하면 다짐할수록 거기에는 현실에서 감지할 수 없는 미지의 미래의 내용이 깃드는 것이요, 그래야만 미래의 주인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 가운데에도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현실에 실패의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부터 결정되느냐? 예배시간과 기도시간에서부터 결정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하겠다' 하는 자리에서부터 결정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면 높아질 수 있지만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평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수평선에 있으면 모르지만 거기에서 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미래와 현실의 승리를 결정짓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심각하게 정성들이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심각하지 않은 자리에서는 그것이 결정 안 되느냐? 천만에요. 물론 심각해 가지고 몸부림치는 자리에서도 실패의 요인이 결정될 수도 있겠지만 심각하지 않는 자리에서 그런 실패의 요인이 현실과 이마를 맞대어 가지고 전진과 후퇴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얼마나 심각하냐 하는 심각의 정도가 결정의 요인이 되는 것보다도 심각하지 않을 때에 자기의 운명이 뒤넘이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저기 땅 끝에서 하나의 선이 나를 찾아오고, 이 끝에서 현재의 나와 더불어 맞춰 나가는 선이 있다면 이것이 어느때에 마주칠 것이냐? 미래에 마주쳐 가지고는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언제 연결시킬 것이냐? 현실의 한 시점에서 그것이 연결될 수 있는 때를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진 것이 하늘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 세력권내에서 제거당할 것이냐? 아닙니다. 제거돼서는 안 됩니다.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아무리 천지가 동요하더라도 그것만은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제일의 기준, 절대적인 기준을 현실에 입각한 자기 생애과정에서 반드시 결정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되는 그 순간은 현실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미래의 요인이 될 수 있는 대표적인 기준을 결정지을 수 있는 공고한 자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