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를 맞아 접붙임을 받으려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7권 PDF전문보기

메시아를 맞아 접붙임을 받으려면

타락한 인간은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기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절단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체를 새로이 접붙임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접붙임을 받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전체를 부정하는 자리입니다. 부정을 하는 데는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부정하고, 지금 살고 있는 현재를 부정하고,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그렇게 완전히 부정하는 자리를 통과하지 않고는 접붙임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아무리 좋은 나무라 하더라도, 4천년 묵은 나무라 하더라도 그냥 그대로 남아지기를 원한다면 그 나무는 접붙일 수 있는 운명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살고 있는 나무, 접붙임을 받아야 할 그 나무의 입장을 두고 볼 때, 세계를 덮고도 남을 수 있을 만큼 싱싱한 나무일지라도 그 나무 자체를 존중시해 가지고는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운명은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까지도 전부 부정하고 꺾어 버려야만 비로소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완전한 기대가 조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하나님의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당연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를 존중시하고 현재를 자랑하고 미래의 희망을 품고 움직이는 자리에서는, 이것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자랑하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참된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메시아와 만날 수 있는 자리, 메시아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그 자리가 행복한 자리라면 모르거니와 만약 비참한 자리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행복한 자리에서 영광스럽게 맞이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비참한 자리에서도 즐거이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메시아를 맞이하여 그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여러분들 각자의 선조가 다르고, 여러분의 얼굴 얼굴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자리에서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처해 있는 자리와 배경과 입장이 다른 자리에서 자기 나름의 운명을 가려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하여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는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이 무엇이냐? 감사한 마음으로 자기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자리, 아무리 비참한 자리에서 메시아를 맞이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자리보다 더 비참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비참한 자리에서 맞이해야 할 메시아를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처해 있는 단계가 천태만상이기 때문에 메시아를 맞이하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결정적인 내용은 무엇이냐? 비참한 길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참한 길을 가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알고 기쁜 마음으로 희생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만이 메시아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런 것을 알고 그런 길을 가려고 하지만, 가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와 형제가 있는 동시에 친척이 있는 것이요. 종족이 있는 것이요, 민족이 있는 것이요, 국가가 있는 것이요,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에서 각자는 소망을 중심삼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에서 볼 때, 메시아로부터 접붙임을 받기 위하여 나서는 자리는 지극히 어러석은 자리로 보입니다. 그 자리는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지극히 어리석은 자리로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자기의 입장을 두고 볼 때, 각기 사정은 다르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형제가 있고 종족과 민족과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시는 메시아는 국가를 대표한 자리에서 승리권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요, 민족을 거느린 배경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요, 종족의 권위를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요,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받을 수 있는 가정의 배경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메시아는 단 한 분입니다. 단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나라를 가진 것도 아니요, 친척을 가진 것도 아니요, 가정을 가진 것도 아니요, 사랑할 수 있는 형제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홀로라는 것입니다. 홀로 고독단신이라는 거예요.

그런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가정적 기반이라든가 국가적 기반이라든가 자기 나름의 영광의 터전을 일시에 포기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서 있는 나라를 부정해야 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민족을 부정해야 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종족을 부정해야 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가정을 부정해야 됩니다. 또 그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를 부정해야 되고 형제를 부정해야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 부정해야 됩니다. 나를 부정해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접붙이려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아요. 그렇지요?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의 접붙임을 받기 위해서는 돌감람나무를 잘라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자르지 않으면 접붙일 수 없습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어디를 잘라야 되느냐? 가지를 잘라서는 안 됩니다. 몸뚱이 전체를 뭉텅 잘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잘라야 돼요. 그 몸뚱이를 뭉텅 잘라 가지고 참감람나무의 눈이면 눈, 가지면 가지를 받아 와야 됩니다. 즉, 돌감람나무는 참열매를 보지 못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참감람나무의 눈 하나를 받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라서 큰 나무 전체를 잘라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것을 그 환경에서 보면 '다 같은 것이 아니냐, 다른 것이 무엇이냐'라고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 중의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요, 무지한 사람 중의 지극히 무지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나 형제, 그리고 종족, 민족, 국가가 그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랑하는 만큼 그 일을 반대하고 가로막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응하게 되는 날에는 돌감람나무 그대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참감람나무의 접붙임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