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의 세계 회복과 개인의 가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9권 PDF전문보기

본성의 세계 회복과 개인의 가치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다면 오늘날 이러한 인생의 길을 해결짓기 위해서, 우리 인간들을 동기의 자리라든가 목적의 자리로 끌고 가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종교를 통해서 섭리해 나오셨는데, 종교를 통해서 마음과 더불은 생활을 강조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마음과 더불은 생활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 세상과 더불어 생활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끝날 이후의 세계, 이 세상을 넘어선 끝의 세계의 생활 인연을 강조해 나오신 것입니다. 기독교를 보더라도 이 현실 세계를 중심삼고 살라고 가르쳐 주는 도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라고 가르쳐 준 그런 무엇은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마음세계에서의 평화를 부르짖고 나오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 이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다. 마음세계에 천국이 있고, 또한 천국은 끝날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며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끝날의 천국이라는 것은 이 세상과는 상관이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과정을 거쳐가는 인간들이 필요로 하고 중요시하는, 역사과정의 내용을 가르치는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본래 그래야만 되는 것입니다. 만일 과정의 도리를 가르치고 그것을 표준으로 하고 목적으로 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는 순수한 종교적인 견지에서 보게 될 때 사교인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를 다짐하고 본성의 세계를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성의 세계에서의 내 개인의 가치가 어떤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본성의 세계에 있어서 내 가정의 가치가 어떤 것이냐?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마음의 세계, 본성의 세계의 국가관, 세계관이 어떠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천국은 네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음속에 있다는 천국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기독교에서도 지금까지 확정짓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천국이 외적인 세계의 천국으로 연결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성서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와서 기독교가 갈 길을 못 가리는 것은 기독교가 그런 자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결론적인 위치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본성의 세계에 있어서의 마음의 천국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천국의 본질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앞으로 후대에 오게 될 본성의 세계, 천국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이냐? 이것이 우리가 문제시해야 할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심이 누구냐? 물론 사람을 통해야 되겠지만, 사람은 기원도 아니요 전체적인 목적의 결과도 아니기 때문에 그 기원이 될 수 있는 것과 완전히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그은 선이 반드시 여기에 도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작용하면 반드시 여기에 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하심) 그 작용은 어디에 미쳐야 되느냐? 나라에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개인에게 미쳐야 됩니다. 특정한 민족에게 미치기 전에 특정한 개인에게 미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섭리를 해 나오신다 하더라도, 그 섭리가 아무리 크고 넓고 긴 역사적인 섭리라 할지라도 반드시 개인을 통해서 접근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개인은 어떠한 개인이냐? 하늘을 위하는 개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절대시하는 개인입니다. 동기를 자기 생명보다도 더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개인을 통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확정되면 그 개인을 통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 개인이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을 통해 가지고 여기서 사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판서 하시면서 말씀하심) 그 중심으로 결정되기 전에 사방에 금을 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었다가는 화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의 폐단이 그거라구요.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남아진 종교의 폐단이 무엇이냐 하면, 이 중심 자리에 오기 전에 요런 놀음을 한 것입니다. 그어 놨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세계적 틀거리를 잡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실 때에 그 완전한 개인과 접선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때인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개인과 하나님이 접선할 수 있는 세계적인 중앙지인 동시에 국가적인 중앙지요, 종족적인 중앙지요, 가정적인 중앙지요, 개인적인 중앙지였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요 자리, 모든 일체의 중심자리인데, 하나님은 그 한 점을 중심삼고 결정지으려고 섭리해 나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국권과 교권을 중심삼고, 자주적 권한을 중심삼고 세계에 적응하고, 거기에 하나되지 못하는 일체를 제거시켜 버린다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