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역사의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단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9권 PDF전문보기

새역사의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단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자리에,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느냐? 때가 가까와 옴에 따라서 삼팔선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목표로 하는 이상이 가까와 오게 되면 여기에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나라의 위험이 교차되고, 교회의 위험이 교차되고, 가정의 위험이 교차되고…. 전체가 일직선상에서 천적으로 전체 백성을 대표해서 나를 반박하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무자비하게 그것을 격파하고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거든 내가 국경선을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제거시켜서 처단하고 국경선을 넘어가게 되면 내게 공신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찬사의 영광이 기다릴는지 모르지만, 그러기 전에는…. 그 나라가 오기 전에 내가 죽어 버리면 도리어 한의 요건을 남기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사망의 삼팔선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맞아 싸움으로써 승리의 결정을 짓지 못하는 오늘날, 나만이라도 삼팔선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행각의 노정이더라. 그렇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은 날들이 없다 이거예요. 웃어도 마음 놓고 웃지 못하고 웃음을 통하여 원수의 주목거리가 되고, 살아도 마음 놓고 살지 못하고 원수에게 침범받을 수 있는 무대가 사방으로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제어하고 스스로 방비하면서 이 경계선 위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막는 것이 새 역사의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단이 가야 할 운명길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가 부패하고 이 나라가 혼돈되고, 이 나라가 혼란되는 것을 볼 때, 그걸 보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우리의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기점을 중심삼고 세계 제패를 꿈꾸는 악당의 무리들은 이미 기력이 꺾이고 서릿발을 맞아 가지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현정세를 바라보게 될 때, 이때야말로 우리가 기동대를 발동해 가지고 적진을 격파할 최후의 공격진이 될 것을 다짐해야 할 때가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루의 날들을 습관적인 날과 같이 맞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을 똑같은 생활로 보내려 하는 사람은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패배자가 되고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나는 통일교단에서 어떠한 시대를 맞고 있느냐? 봄시대냐, 여름시대냐, 가을시대냐, 겨울시대냐? 사시장철을 내 일신에서 응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생명의 여력을 지닌 새 씨앗이 되어 있느냐? 나는 희생하더라도 내 일족은 천세 만세에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의 천국과 연결될 수 있는 무리로 남아질 것이다. 그런 기수로서 등장하겠다. 이 시대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을 남기기 위해서 나는 싸워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할 때는 우리 목전에 다가왔는데, 이 목전에 다가온 환경요건을 어떻게 흡수하여 소화 극복하는 자신으로서 저 경계선을 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심상치 않은 문제인 동시에 비장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흘러가게 되는 날에는 그 자리에서 죽는 거라구요. 쓰러지는 날에는, 객사하는 날에는 원수의 나라에서 주인을 지키고 동산을 지키는 개의 밥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문을 출입하는 개새끼를 살찌우는 죽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구요. 여러분,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말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구요. 하나님은 그런 비장한, 그런 결정적인 연결을 우리 생애노정을 통하여 다짐하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럴 것이고, 여러분 후대의 후손들이 그럴 것이고, 오늘 우리 통일교단이 가는 운명이 그럴 것을 생각할 때, 그 운명을 우리 시대에 있어서 통합해서 해결지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집약 시켜 가지고 귀결짓느냐? 오늘날 남북이 교차되는 이런 정상시대를 바라보게 될 때,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최고의 결의와 최대의 결단을 중심삼고 최후의 목적을 향해서 총진군할 것을 결의하지 않고는 여러분은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

나무에 달렸던 잎이 아무리 무성하다 하더라도, 그 피었던 꽃이 아무리 무성하다 하더라도 떨어지고 난 후에는 거름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미래에 보다 큰 통일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잎이 되었으면, 꽃이 되었으면 거름이 되는 것을 정상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뭐냐 하면, 내가 갈 때는 통일교회에 거름이라도 주고 가는 자신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정상적인 잎의 사명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잎이 되어 가지고는 잎으로서 거름의 사명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고 나면 통일교회 역사에 있어서 기억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고 난 후에도 추도의 대상으로, 흠모의 대상으로 남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망권에 태어난 이 원한의 근거지를 격파, 탈피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암중모색하고 있는 와중에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한 목표를 제시하고 방향을 제시한 현시점에서 가야 할 행보를 더디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낙오자의 운명과 패배자의 서러움의 고배를 모면하지 못할 것이 아니냐.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쓰러지고 비참하게 사라져 간 것을 생각할 때, 내가 죽더라도 그 자리에 서 가지고 동참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역사적인 필연의 운명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사랑하고, 혹은 남편을 사랑하는 그 자리는 생각해야 할 자리이고, 자식을 품고 사랑하는 자리도 생각해야 할 자리이고, 누워있는 방바닥도 생각해야 할 자리이고, 살고 있는 나라도 생각해야 할 나라이고, 살고 있는 세계도 생각해야 할 세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래서 하나에 둘을, 둘에 셋을 배가해 가지고 종족 편성, 민족 편성, 국가 편성, 세계의 편성을 통하여 새로운 방향과 새로운 목적관을 제시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창건하고자 하는 것이 통일용사가 아니겠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을 슬픔으로 맞을 것이냐, 기쁨으로 맞을 것이냐? 슬픔으로 맞는 날에는 열매를 못 보는 것입니다. 절대 열매를 못 보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그것을 흡수해 가서 영양을 취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가지고, 어렵다 하는 그 자리에 있어서도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