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지운 것은 잊어버리고 신세진 것은 절대 잊지 말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0권 PDF전문보기

신세 지운 것은 잊어버리고 신세 진 것은 절대 잊지 말라

주고 나서도, 하고 나서도 잊어버리는 거라구요. '내가 아무 때 너를 얼마 도와주었지' 하며 수첩에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수첩에 기록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어느때 누구 누구에게 얼마 도와주고, 누구에게 얼마 도와주었다고 써놓고 그걸 연상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부자(父子)의 심정의 인연을 맺고자 하는 주체적 입장에 섰으면,'아무때, 아무개에게 얼마 주었으니 그걸 찾아야 되겠다. 너에게 이렇게 주었으니 너는 나에게 이렇게 해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려고 안 합니다. 다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린다구요. 될 수 있는 대로 전부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에게 잘해 주고 그걸 기억해 두나요? 너 시집갈 때에, 너 장가갈 때에 너를 위해서 부모인 내가 공을 들이고 뭘 해준 값이 몇천 몇백 몇십만 원이라고 기억해 두나요? 부모는 해주고 나서 잊어버리는 겁니다. 잊어버리는 거라구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지 않는거예요.

그대신 자기가 신세를 진 것은 절대 안 잊어버리는 거예요. 자기가 해준 것은 자꾸 잊어버리고 반대로 신세를 진 것은 안 잊어버린다구요.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좋아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 선생님이 중학교 때에 신세를 진 송씨 부인이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송씨들에게 그 신세를 갚으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중학교 시절에 점심을 안 먹었어요. 돈이 없어서 안 먹은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는 뭐 있어 먹고도 양냥이라구요. 그저 먹고도 또 먹고 싶은 한창 때입니다. 그런 때에 점심 안 먹었으니 점심 때 밥 그리워하는 마음이 복잡하더라구요. 친구들은 도시락을 가지고 와 먹고 있는데, 저 먼데 혼자 앉아 가지고 밥도 안 먹고 명상하는 그 자리는 심각한 자리라구요.

옛날 두 교회가 한강가에서 합동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모래 사장이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빙고 앞이었어요. 점심 때 모두 점심을 먹는데 그 속에서 혼자 앉아 가지고 버틸 수 있나요. 그래서 혼자 쓱 뒤로 빠져 나와 돌무더기 같은 데에 가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가 지금도 그립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배고프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구요. 돈이 없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요. 점심을 먹지 않고 그 점심 값으로 반드시 남을 도와주는 거라구요.

또 학생 때는 전차를 타고 다니지 않았어요. 절대 안 타고 다녔다구요. 그때 전차비가 5전씩이었어요. 그래도 반드시 걸어 다녔습니다 . 그래 가지고 왕복 10전을 모아 길가에서 적선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때는 거지들을 쭉 관찰하는 거예요. 옛날 노량진 고개하고 화신 백화점 옆 골목길에는 거지들이 많았습니다. 갈 때 한번 쓱 보고, 돌아올때 다시 한번 봐 가지고 그중에서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을 가르는 것입니다. 거지들 가운데도 새파란 젊은 녀석들에게는 안 주는 거예요. 불쌍한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봉사라든가, 나이 많은 사람을 골라 가지고 적선하는 거예요. 적선도 그렇게 해주었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남에게 신세진 것은 영영 안 잊는 겁니다. 내가 점심을 안 먹고 자갈 쌓아 둔 돌 무더기 뒤에 있었는데 그때 송씨 부인이 아이스케이크 두 개와 빵 두 개를 가져 왔었어요. 그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한 개에 일전짜리예요. 그거 모두 합해야 4전인데, 그 빵과 아이스케이크를 갖다 준 것이 영영 잊혀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때 그 자리가 얼마나 심각한 자리였더냐 이거예요. 이렇게 신세를 진 것은 영영 잊혀지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습관을 들여 놓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려울 때에 도움을 받은 것은 영영 잊지 않는다구요 알겠어요? '아무때 어떻고, 아무때 어떻고…' 하며 나를 위해서 수고하고 나를 위해서 베풀어 준 그 은덕은 영영 잊어버리지 않는다구요. 그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인간을 위해서 그것을 갚으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갚아 줄 수 없는 거라구요.

은덕을 갚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을 언제 다시 만날 것이냐? 그 사람을 찾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신세를 진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그 마음을 가지고 '아무때에 내가 은덕을 받은 것을 이 사람한테 주겠사오니 대신 갚는 조건으로 하나님이여, 받아 주시고 대신 갚아 줄 수 있는 자리로 메워 주시면 좋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인을 만나서 주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주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겠어요? 이러한 분위기의 생활체제를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