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1권 PDF전문보기

끝까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 절박한 세계정세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민주세계와 기독교 문화권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민주세계와 기독교 문화 권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기독교면 기독교를 보게 될 때, 자기 마음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특정한 종단이 있으면 그 종단은 그 종단을 창시한 창시자의 뜻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파가 있습니다. 종파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진정한 종파가 가야 할 길은, 하나님과 더불어 가는 길은 두 길이 아니라 하나의 길입니다. 그 하나의 길은 어떠한 길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가 찾아내려면 쉽사리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 이냐? 이 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종교보다도 하늘이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고생하고 수난길을 즐거이 가겠다고 나선 무리가 있다면 그게 일치된 것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종교 가운데 제일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뒤넘이치는 무리가 아닐 것이냐. 만일 지상에 하나님이 인연을 두고 생각할 수 있는 단체라면 그러한 곳 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끝까지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참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끝이라는 것이 나 혼자 죽을 수 있는 입장에서 죽어 갔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가정이 전부 다 희생될 수 있는 가정의 끝도 있는 것입니다. 혹은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의 끝도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의 끝도 있을 것이 아니냐.

그래서 끝까지라는 말은 가정적인 기준에서 싸울 수 있는 입장에 선 그런 끝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자리에서, 민족적인 싸움 이내에서의 끝이 아니라 그 제일 끝에서 바라보는, 그래 가지고 세계를 향한 노정을 남긴 자리에서의 끝이 아니라 세계의 끝을 지내고 나서 이제는 이 이상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의 끝이 아닐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신앙길을 따라 하나님과 더불어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고,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 끝까지 갈 때까지의 그 수난이 얼마나 클 것이냐? 그 길을 일생 동안, 혹은 생애를 통하여 가야 되는, 필시 가야 할 그 누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길을 모색하는 사람은 평안이니 안식이니 희망이니 소망이니 영광이니 하는 것을 바라는 마음 가지고는 그 끝에까지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내세워 가지고 그 무엇을 그리는 자리에서 산다는 것이 아니라구요. 죽고자 하는 자가 사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만이 산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승리의 자리에서 개인의 끝을 결할 수 있는 사람도 죽고자 하는 각오를 하지 않고는 개인으로서 승리를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과 더불어 죽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가정으로서 가야 할 끝을 하나님과 더불어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두말할 것 없습니다. 또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와 더불어 죽고자 하는 이런 일체가 통일된 자리에서 그런 것을 결하지 못하게 되면 그 국가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끝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한 결론을 두고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언제 그 끝 된 자리에 서 봤느냐? 개인이 아니고 가정, 가정이 아니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끝 될 수 있는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느냐? 하나님은 그 끝이 오기를 얼마나 바랄 것이냐? 내 개인의 끝이 이 순간에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 순간에 있기를 바랄 것인데, 여러분은 이 순간에 내 개인의 끝을 결정짓는다고 맹세한 입장에서 얼마나 자기 신앙길을 다짐해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지 못한 나 자신임을 발견하거든 다시 한 번 전폭적으로 자신의 신앙태도를 뜯어고쳐야 됩니다. 자신을 죽여 버려야 됩니다. 지금의 내 신앙자세는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며 그것을 무자비하게 타파해 버리고 새로이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미루어 헤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은 언제 끝을 결할 수 있는 자리에 섰던고? 혹은 민족과 더불어 언제 끝까지 왔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서 봤던고? 혹은 세계와 더불어 언제 그런 자리에 서 봤던고? 그러한 자리가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하는 그 말을 하늘이 누구나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교육할 수 있는 자리에서 말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말은 하늘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생활의 내막을 선포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하늘은 죽음을 각오한 투쟁의 노정을 엮어 가고 있다는 배후의 사실을 우리는 새삼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죽기를 원하면 될 리 없는 것입니다. 이 말 자체가 모순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 타락한 세계는 엇갈린 세계, 반대의 세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 완전 부정할 수 있는 최후의 극점이라는 것은 죽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죽는 그 자리에서부터 세상의 인연이 끊어지고 하나님과 새로운 인연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는 이별하게 되고 하나는 상봉하게 되기 때문에, 하늘이 바라는 제일보의 기준이 그 자리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단연코 그런 명령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는 길과 우리 인간이 가는 길은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과 사탄은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하늘과 사탄이 정면적인... (녹음 테이프 잠시 끊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