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육심의 싸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5권 PDF전문보기

양심과 육심의 싸움

우리 인간 자체도 두 가지를 가지고 있다. 양심과 육심을 갖고 있다. 이 세상에서 양심을 갖지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양심 없다고 하는 사람 있나요?「없습니다」모두 자신을 갖고 있다. 양심을 봤나요? 누구 한 사람 본 자는 없다. 그러나 알고 있다. 육신이라고 하는 것을 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양심을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육신이 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보면서 절대적으로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비례적으로 볼 경우, 있다고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알면서 본 적이 없는 것과, 있다고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알면서 절대적으로 본적이 있다고 하는 것은 어느 쪽이 강한가? 육심(肉心)편이 앞서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여러분도 그렇죠. 먹고 싶다, 배가 고프다, 이런 경우 배가 고프기 때문에 양심이 알아차릴까. 육심이 배가 고프니까 양심이 배가 고프다고 알아차릴까. 육심, 누구나 육심이 앞선다. 바라는 것은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살고 싶은 것이다. 이런 것은 무엇이 중심이라고 할까. 접하는 촉각의 부분은 내적이 아니고 외적이다. 그러나 느낀 바 그것을 결의하고 그것이 결실되는 본거지는 육심이 아니고 양심이다.

이것은 지금 철학적인 문제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이 인간과 접하는 장소와 사탄이 인간과 접하는 장소의 그 경계선은 어딜까. 경계선이 어디냐면 자신이다. 여러분도 세계적인 전쟁을 두려워 말라. 자기를 중심으로 이대(二大)의 진영이 매일 싸우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도 할 수 없다. 아침으로 밤으로 하루에 수십 회, 수백 회도 한다. 한마디의 말을 잘못 했을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그때 비난할 수 있는 것, 책망할 수 있는 것은 육심인가, 양심인가? 책망하는 존재는 무엇이냐? 양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싸움인 것이다. 양심이 약해져서 육심이 '아─ 이놈 양심아. 양심아. 너 뭘하고 있는 거야' 하는 싸움을 한 적이 있는가. 이 반대인 것이다. 양심이 육심에 대해서 공격한다. '그것 하면 안 되요' 하고. 그러면 이 세상에는 양심적인 사람이 비례적으로 많은가? 아니면 비양심적인 사람이 비례적으로 많은가?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양심적인 사람이 비례적으로 많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엉뚱한 일을 다 해버린다. 그 싸움을 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라든가 교양이라든가 하는 교육의 기준을 어디에서 구하고 있는가? 양심의 힘이다. 그것이 교육이나 종교의 작용인 것이다. 그리고 뭘하는가. 육심의 발판을 점령한다. 목적은 거기인 것이다.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의 경계가 생긴다. 그것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