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가 투입되고 투영된 나임을 자각하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8권 PDF전문보기

모든 존재가 투입되고 투영된 나임을 자각하라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생활은 고의적으로라도 그렇게 해 나가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지 않습니까? 이 마음만은 틀림없습니다. 내가 하늘과 더불어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틀림없지 않습니까?'하는 마음이 그 누가 부정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틀림없는 마음인 한, 그 사람은 하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깊고 얕은 차이, 높고 낮은 차이, 넓고 좁은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범위에 있어서 접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 무엇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가까우면 열의가 있는 것이요. 멀면 그비례적인 입장의 열의를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도 같은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공식적인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나' 하게 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내가 동쪽에 서 있느냐, 서쪽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궁금하면 기도해 보라구요. 내가 어느 방향을 맞춰야 기도가 잘 되는지 아는 거라구요. 그것은 전파와 마찬가지라구요. 안테나를 전파의 방향과 맞추게 되면 잘 통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기도해 보면 안다구요.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없다. 있다 하는 말이 필요한 게 아니라구요. 밥을 먹으려고 숟갈을 들게 될 때도 자동적으로,오늘 내가 이 밥을 대하는 것은….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혼자만이 아니예요. 사람이란 어떤 존재냐? 사람이라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구요. 우주의 공동적인 인연을 종합해 가지고 결실체로 나타난 것이 인간이 아니예요?이런 인간에게는 만물의 종합상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요. 우리의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수많은 선조들의 모든 소성(素性)들이 전부 다 투입된 거라구요.

김 아무개 하면 그 아무개 하나가 아니라구요. 그에게는 식물, 광물, 동물, 모든 만물의 형태가 다 들어가 있다구요. 얼굴은 지금 자기 얼굴같이 느끼고 있지만 그 얼굴이 될 때까지는 수만년의 역사를 거쳐왔다구요. 수만년에 걸쳐서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아 가지고 그렇게 생겨난 거라구요. 그것은 기적적인 실체라구요.

그뿐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하늘의 인연이 따라왔기 때문에 그가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인연을 두고 볼 때 무한한 곡절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오늘날의 자기를 이루어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물의 모든 관계적 존재가 투입되고 투영된 실체가 자기라는 것입니다. '나'라 하게 될 때 나라는 것은 오늘날 여러분이 제한된 입장에서, 상습화된 자기 입장에서의 '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공동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서 자아의 자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움직인다고 해서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고요. 우주 출동이라구요. 역사 출동을 하고 있다구요. 그런 의식으로 자기를 실현하게 될 때, 이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제한된 이 땅에서 말하지만 그 말은 세계를 향해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런 존재입니다. 그렇지 않아요?부모의 얼굴을 닮지 않은 어린 사람들은 옛날 선조를 닮은 것입니다. 자기 머리칼이나 세포 한 부분에 자기 몇천 대 선조의 분자가 전부 다 투입돼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가 움직여 가지고 나 하나 조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움직여 가지고 나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는 거라구요. 그런 실감을…. 그것은 결실인 것입니다.

'그 결실이 빛나는 결실로서 나타나라, 영광된 결실로 현현해라, 꽃이 피고 향기가 풍길 수 있는 내 자신이 돼야 될 것이 아니냐?열매가 맺혀야 될 것이 아니냐?이런 인연을 맺고 나와 가지고 그 인연의 주체가 누구냐 할 때,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거기에 있어서 우주적인 자아를 발견하고 체휼적인 심정을 논의하고 나서는 자를 푸대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런 자를 푸대접했다가는 존속할 수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각권내에 서서 신에 대한 체휼을 느끼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자각된 자리에서 믿는 것을 말합니다.